서른여덟 베테랑 포수 이지영은 통산 1207경기에서 도루 25개를 기록했다. 6개 이상 해낸 시즌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도루 시도도 39번뿐이었다. 대체로 히트 앤드 런이나 더블 스틸 등 작전을 수행할 때였다. 잘 안 뛰는 선수다.
이지영은 지난 25일 홈구장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주중 3연전 1차전에서 발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 그는 0-0 동점이었던 5회 말 무사 1루에서 타석에 나섰다. 상대 투수 엄상백의 초구 체인지업을 공략했지만, 내야 땅볼에 그쳤다. 1루 선행 주자는 2루에서 아웃됐다.
이지영은 아쉬운 타격을 주루로 만회했다. 후속 타자 이용규와 상대 배터리의 초구 승부 뒤 2루 도루를 시도했다. 투수는 세트 포지션에서 한 번도 1루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이지영이 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구종 선택은 체인지업. KT 포수 장성우의 대처는 빨랐지만, 허를 찔린 탓에 정확하진 않았다. 유격수 김상수가 원바운드 공을 몸으로 막았다. 이지영은 이미 완벽하게 타이밍을 빼앗았고, 여유 있게 2루를 터치했다. 이지영의 시즌 1호, 개인 통산 26번째 도루였다.
이어진 상황에서도 투지가 돋보였다. 타자 이용규는 엄상백으로부터 우측 날카로운 타구를 만들었고, 공이 2루수 오윤석의 글러브에 맞고 굴절되며 느려진 사이 이지영이 폭풍 질주로 3루를 돌아 홈을 밟았다. 키움의 1-0 리드.
선발 투수 안우진은 5회까지 피안타 없이 무실점 투구를 이어갔다. 분투하는 투수에게 힘이 되는 득점을 ‘마누라’ 이지영이 만들어냈다. 키움은 이후 안우진이 7회까지 추가 실점 없이 막고, 불펜 투수 김동혁과 김재웅이 1이닝씩 막아내며 리드를 지켜냈다. 3연패를 끊었다.
이지영은 이날 KT 강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는 투수 리드까지 보여줬다. 7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나선 3번째 타석에서는 KT 투수 김영현을 상대로 안타까지 쳤다. 올 시즌 타율은 0.275.
완벽한 투구를 보여주며 시즌 2승을 따낸 안우진의 활약이 더 조명받았지만, 팀 승리는 이지영의 발과 머리(투수 리드)가 만들었다. 이지영은 경기 뒤 홈팬들 앞에서 수훈선수 인터뷰를 가졌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