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이었습니다. 포항 물회를 특허청의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으로 등록시키기 위한 자문을 하게 되었지요. 포항 물회가 여타 지역의 물회와 어떻게 다른지 조사를 하여 문건으로 작성하는 일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생선을 썰고 양념을 하는 물회 조리법에서 한 지역만의 특성을 발라내어 밝히는 일은 매우 섬세한 관찰을 요구합니다. 재료의 차이도 꼼꼼하게 보아야 합니다. 포항의 물회 식당을 순회하며 발견한 흥미로운 재료가 가시오이였습니다. 다들 가시오이를 채로 쳐서 올리더군요.
저와 동행을 한 포항시 공무원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포항은 다들 가시오이를 쓰나 봅니다.”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무슨 오이요? 저거 그냥 오이 아닌가요?”
그때에 포항의 시장을 두루 돌았는데 다다기오이는 안 보였습니다. 포항에는 가시오이만 있으니 그게 그냥 오이였던 것이지요.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 등록을 위한 포항 물회의 특징 중 하나로 가시오이를 적어서 넣었습니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금요미식회에서 가시오이를 다루었습니다. 가시오이를 칼로 썰기보다는 깨뜨려서 먹으면 향이 더 좋고 물비린내가 적다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방송이었습니다.
저와 함께 금요미식회를 준비하는 김정수 요리사 겸 딴지일보 기자는 가시오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전북 전주 출신에 서울에서 삽니다. 김정수 기자가 택배로 받은 가시오이를 본 부산 출신 딴지일보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거 그냥 오이잖아.”
제가 대충 그려본 오이 취식 분포도는 이러합니다. 서울-경기-강원-충청-전라는 다다기오이, 대구-부산-경상은 가시오이. 양 진영 모두에 청장오이가 일부 존재합니다.
오이 품종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먹는 오이는 대부분 취청과 다다기 두 종류입니다. 취청은 크고 청색이 짙으며, 다다기는 작고 옅은 색을 띕니다. 취청 중에 가시가 도드라지게 있으면 가시오이, 없으면 청장오이 또는 청오이라고 합니다. 다다기는 흰색이 많으면 백다다기 또는 백오이라고도 부릅니다.
다다기가 연한 때깔 때문에 부드럽게 아삭거릴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때깔만 그렇지 취청이 더 연하게 아삭거립니다. 부드럽게 아삭아삭 씹히며 오이 특유의 향이 강한 것은 취청 중에서도 가시오이가 제일입니다. 오이 겉면에 자잘한 가시가 돋아 있어 거칠어 보이지만 보기와는 전혀 다른 맛을 냅니다.
가시오이가 다다기오이보다 맛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두 오이의 특징이 다르다는 것이지요. 오이지나 오이소박이 등은 잘 물러지지 않는 다다기가 낫습니다. 생으로 먹을 때에는 가시오이가 낫구요. 분별해서 먹자는 게 저의 주장입니다.
농산물의 맛을 좌우하는 첫째 조건은 품종입니다. 그 다음이 산지이고 계절이고 재배법입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조리할 음식에 적합한 품종의 농산물 정도는 분별해야 할 것인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이렇게 알려봤자 소비자는 유심히 보지도 않고 또 금방 잊습니다. 소비자가 농산물을 사는 시장에서 이런 정보들이 흘러야 합니다. 마트의 매대에 농산물의 품종과 조리적 특성 등을 적어놓으면 우리의 미식 생활은 훨씬 즐거워질 것입니다.
1992년 음식 전문 기자가 되겠다고 했더니 제 친구들은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춘향전 변사또 놀음이나 하겠다는 거야?” ‘일상의 미식’을 말해주었으나 친구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듯했습니다. 30년이 지났는데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비틀어버립니다.
그럼에도 다시 말합니다. 미식이란 돈 있는 자의 호사 취미가 아닙니다. 우리 일상을 조금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즐기는 일이 곧 미식 생활입니다. 오이의 품종을 분류하고, 그 품종에 맞는 적절한 조리법을 구사하며, 그 과정의 이야기를 오이 요리를 함께 먹는 사람들과 나누는 게 진정한 미식 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