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투수 이의리(21)를 양현종(35·이상 KIA 타이거즈)의 후계자로 부르기엔 아직 부족하다.
이의리는 올 시즌 첫 5번의 선발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1.99를 기록했다. 피안타율은 0.188. 얼핏 흠잡을 곳 없는 성적으로 보이지만, 투구 내용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9이닝당 볼넷이 무려 8.74개로 규정이닝을 채운 29명의 투수 중 압도적 1위. 제구 난조가 심각하다.
25일 NC 다이노스전에서도 악순환이 반복됐다. 4이닝 동안 볼넷 3개(몸에 맞는 공 1개)를 허용했다. 볼넷이 실점으로 연결돼 더 뼈아팠다. 0-0으로 맞선 2회 초 볼넷 2개로 만루 위기를 자초한 뒤 밀어내기 몸에 맞는 공이 나왔다. 공 하나에 희비가 엇갈리는 풀카운트 승부에선 쩔쩔맨다. 시즌 23번의 풀카운트에서 볼넷 12개(피안타 2개·탈삼진 5개)를 쏟아냈다. 풀카운트 피출루율이 무려 0.609에 이른다.
비효율적인 투구는 이닝 소화에 장애물이다. 이의리의 이닝당 투구 수가 20.6개. 5회만 채워도 100구를 넘긴다. 아직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가 없는 이유다. 조기 강판이 반복돼 그가 등판하는 날에는 불펜 소모도 크다. 김종국 KIA 감독은 이의리가 등판하는 날 롱릴리프 임기영을 마운드에 올린다. 이의리의 약점을 보완하는 궁여지책인데 임기영마저 부진하면 그날은 불펜 소모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광주제일고를 졸업한 이의리는 2021년 1차 지명으로 KIA에 입단했다. 프로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팀 선배이자 KBO리그 대표 에이스 양현종의 후계자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데뷔 2년 만에 개인 첫 두 자릿수 승리(10승)를 따내며 가치를 입증했다. 하지만 제구 불안이 꼬리표처럼 붙었다. 첫 두 시즌 9이닝당 볼넷이 4.71개로 많았다. 잦은 볼넷으로 만루 위기를 자초하고 실점 없이 넘어간다고 해서 어느 순간 '만루 변태'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까지 붙었다. 관심이 쏠린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의리는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만큼 프로야구 안팎에서 높은 기대를 받는다. 그런데 진짜 양현종의 후계자가 되려면 제구가 안정돼야 한다. 양현종은 통산 9이닝당 볼넷이 3.52개. 지난해에는 2.57개에 불과했다.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예리한 제구로 긴 이닝을 책임진다.
볼넷 남발은 수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야수들이 긴 시간 그라운드에 서 있으면 공격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팀이나 본인을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한 이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