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16일 대전 한화 이글스-롯데 자이언츠전. 한화 타자이자 캡틴이었던 하주석은 8회 말 타석에서 헛스윙을 당한 뒤 공 판정에 분개하며 배트를 내리쳤고, 더그아웃에 들어간 뒤엔 헬멧을 던지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벽에 맞고 나온 헬멧이 웨스 클레멘츠 코치의 뒤통수를 강타하기도 했다. 한 선수의 분풀이에 동료가 피해를 입은 것. 하주석은 나흘 뒤 KBO(한국야구위원회) 상벌위원회로부터 출장 정지 10경기, 제재금 300만원, 유소년야구 봉사활동 40시간 징계를 받았다.
29일 잠실 LG 트윈스-KIA 타이거즈전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왔다. LG가 0-4로 지고 있던 3회 말 2번째 타석에 나선 LG 캡틴 오지환이 공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며 격한 모습을 보였다.
KIA 선발 투수 숀 앤더슨의 2구째 높은 몸쪽(좌타자 기준) 포심 패스트볼(직구)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자, 이를 두고 심판에 어필했고, 앤더슨의 3구째 슬라이더에 삼진을 당한 뒤 배트를 지면에 내리쳐 산산조각 내며 흥분했다. 한 손으로 배트가 부러지지 않자, 두 손으로 잡고 다시 내리쳤고, 헤드가 부러져 남은 손잡이도 집어던졌다. KIA 포수 한승택이 이 모습을 황당한 듯 바라봤다.
일단 공 판정 자체가 그 정도로 문제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앞선 1회도 바깥쪽 공에 오지환이 고개를 갸웃거린 바 있다. 공 2개다. 이날 홈플레이트 뒤에 있던 함지웅 구심에 대한 불만이 이전부터 쌓였다고 보는 게 합리적 추측이 아닐까.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배트를 3번이나 내리치는 행동이 공감을 사면 안 된다. LG팬에게도 마찬가지다. 마치 원한이 있는 것처럼 배트를 내리쳤다. 스윙 방향이 지면이면 괜찮은가.
부서진 배트 파편이 날아가 누군가에게 맞았다면 문제는 더 심각했을 것이다. 홈플레이트 부근엔 심판도 있고, 상대 포수도 있고, 배트나 공을 관리하는 인원도 있다.
이날 수원 KT 위즈-삼성 라이온즈전에서도 배트가 조각났다. KT 간판타자 박병호가 3회 말 타석에서 헛스윙 삼진을 당한 뒤 허벅지로 배트를 부러뜨렸다. 박병호도 3볼-1스트라이크에서 들어온 투수 원태인의 낮은 코스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자,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자신을 향한 자책일 수도 있지만, 화(火)도 전해졌다.
문제는 이런 행동으로 누군가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올 시즌 초반, 키움 히어로즈 내야수 송성문이 수비 실책 뒤 분풀이를 하다가 오른쪽 손을 다쳐 10주 진단을 받았다.
현장 지도자 또는 몇몇 야구인은 선수가 무언가를 부수고 부러뜨리는 장면을 두고 투지라며 감싼다. 야구팬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뉠 것이다. 오지환의 행동을 정당한 어필로 보는 이들도 있다.
득이 될 게 없는 행동이다. 야구팬이 왜 타인의 분풀이 봐야 하고, 왜 불쾌감을 느껴야 하는가. 응원하는 선수와 팀의 졸전으로 느끼는 스트레스와는 다르다. 해당 행위가 팀 단합을 위해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옹호하는 목소리는 어불성설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누군가 그랬다고 생각해보자. 그걸 납득하는 자신이 옳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