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선 인종차별 반대 구호가 공식 세리머니로 자리잡았다. 2020년 6월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됐다가 재개되자 선수들은 'BLM(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동참했다. 당해 5월 미국에서 백인 경찰의 과격한 진압 중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기 위해, 킥오프 직전 모든 선수들이 무릎을 꿇었다. 3개월 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2020~21시즌을 맞이해 인종차별 반대 구호인 'No Room For Racism(인종차별이 설 자리는 없다)' 패치까지 선보였다.
그로부터 3년, 사무국과 선수들의 노력에도 프리미어리그 내 인종차별은 여전하다. '세계 최고의 리그'라 불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여전히 인종차별이 이뤄지고 있다. 2021~22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31·토트넘)도 인종차별 피해를 당하고 있다.
아무리 구호와 캠페인이 계속돼도 대다수 관중의 행동과 의식수준이 개선되지 않는다. 올해 3월 일부 현지 관중은 손흥민을 향해 "개고기나 먹어라"는 욕설을 했다. 한국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 행위다.
지난 1일(한국시간) 토트넘과 리버풀과 경기를 중계하던 현지 유명 해설가는 손흥민의 수비 장면을 보고 "그가 무술(Martial Arts)을 하고 있다"는 식의 표현을 했다. 동양인을 중국 '쿵푸'에 빗대 일반화할 때 쓰는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지난 6일 토트넘-크리스탈 팰리스전 도중 한 관중이 손흥민을 두고 '눈 찢기'제스처를 했는데, 이는 대표적인 아시안 비하 행동이다. 인종차별 피해 사례는 계속 나온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과 구단은 관중의 인종차별 행위가 적발될 경우 벌금·경기장 출입 정지 징계 등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아직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8년간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꾸준하게 헌신한 선수를 향한 대우가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상황은 이해하기 어렵다. 프리미어리그는 68개국 출신 선수가 활약하는 세계적인 무대다. 중계를 통해 방송되는 국가도 그만큼 많다. 단순히 잉글랜드 현지 팬에 국한된 로컬 콘텐츠가 아닌, 글로벌 콘텐츠다.
손흥민은 최근 10년 기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스타 중 하나다. 지난해 세계 최고 축구 선수상인 '발롱도르' 시상식에선 후보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2021~22시즌엔 아시아인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오르며 '골든 부트'를 수상하기도 했다. 8일 기준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 통산 득점은 103골로, 32위다. 2000년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맹활약한 슈퍼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스르)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는 모두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이뤄낸 성과다.
그럼에도 일부 몰상식한 관중의 발언과 행동으로 인해 선수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에는 그에 걸맞은 선수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매너를 갖춘 관중이 필요해 보인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내뱉는 몰상식한 관중을 위해 뛰는 선수는 더 이상 리그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