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인나 주연의 ENA 드라마 ‘보라 데보라’가 외모 가꾸는 일의 중요성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에 빗대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뭇매를 맞고 있다. 최근 JTBC 인기 드라마 ‘닥터 차정숙’도 크론병 묘사와 관련해 크게 논란을 빚었던 터라 제작진의 사전 검증에 더욱 세심함이 요구되고 있다.
‘보라 데보라’ 논란은 지난 10일 방송된 9회에서 데보라(유인나)의 대사가 발단이 됐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누군가는 한 컵의 물을 받아서 반만 마시고 나머지 반으로는 세수를 했다. 유리 조각으로 식판 뒤 얼굴을 보면서 면도도 했다. 외모를 가꾸고 치장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다”라는 대사였다.
방송 직후 비판이 쏟아졌다.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생존하기 위해 했던 행위, 세수, 면도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했던 일들을 치장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다뤘다는 이유에서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유대인들은 강제로 수용돼 죽을 운명이었는데, 데보라는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수사적 남용이자 장식주의로 아우슈비츠 유대인을 이용한 것”이라고 대중의 거부감을 설명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후 설치했다. 반나치 성향이 의심되는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죽음의 수용소로 악명을 떨쳤으며, 유대인을 포함한 최소 110만명이 이곳에서 살해됐다.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가볍게 다뤄져선 안 될 아픈 역사다. 죽음의 수용소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결코 병들고, 초라해 보여선 안 됐다. 그렇지 않으면 가스실로 끌려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에게 외모 가꾸기란 죽음을 피하기 위한 생존 수단이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누군가 콘텐츠를 통해 가볍게 다뤘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터다. 그게 국민적 정서다. 데보라의 대사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방송 뒤 일어날 후폭풍을 생각했다면 사전에 대본을 읽어본 누구든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 특히 문화콘텐츠에서 소개되는 내용은 시청자들에게 ‘역사적 사실’로 인식돼 오해의 소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번 ‘보라 데보라’ 논란은 제작진 전체가 책임감을 잃은 결과다.
사실 이 같은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닥터 차정숙’도 최근 크론병 묘사 논란으로 대중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결혼을 앞둔 크론병 환자에게 “못된 병”, “유전된다”고 하는 대사가 논란을 일으켰다. 방송을 본 실제 크론병 환자들은 ‘닥터 차정숙’이 정확한 의학 지식 없이 방송에 내보냈다며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80년대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제작됐던 JTBC 드라마 ‘설강화’ 역시 간첩 미화 및 역사왜곡물이라는 비난 속에 막을 내렸다. 시청자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거나 상처가 될 수 있는 일들을 소재로 삼을 때 신중해야 하는 것은 작품, 제작진을 위해서라고도 할 수 있다.
팩트 체크는 기본이다. K콘텐츠는 이제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는 만큼 제작진의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할 때다. ‘보라 데보라’ 논란의 대사를 차용하자면 “잘못된 정보의 수정은 K드라마 생존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