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 배런(Doug Baron). 독자는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물론 골퍼이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지난 2019년 8월이었다. ‘PGA 투어 챔피언스 딕스 스포팅 구즈 오픈’ 때이다.
PGA 투어 챔피언스는 50세 이상 시니어 선수가 참가하는 골프 투어이다. 당시 뱁새 김용준 프로는 국내 한 골프 TV 채널에서 중계방송 해설을 맡았다. 방송 해설도 할 줄 아느냐고? 그렇다. 곧잘 한다는 평을 들었다. 얼씨구! 자화자찬까지. 요즘은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 파리 날리고 있지만. 어디든 골프 중계 해설자 자리가 나거든 추천해주기 바란다.
코리안 투어 경기위원을 한 경험까지 더해 해설자가 약한 부분인 골프 규칙까지도 명쾌하게 알려주겠다. 다만 미국 해설자처럼 간간히 유머를 섞기도 하니 아주 점잖게만 방송을 하는 제작자라면 못마땅해 할 수도 있다. 걸핏하면 이야기가 딴 길로 샌다. 다시 더그 배런 이야기로 돌아가자.
뱁새 김용준 프로가 해설을 맡은 그 대회 마지막 날 단 몇 홀만 남았을 때이다. 방송 카메라는 더그 배런과 프레드 커플스만 번갈아 비췄다. 그렇다. 백전노장 프레드 커플스.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포함해 PGA 투어에서만 무려 15승을 올린 그이다.
PGA 투어 챔피언스에서도 그 때까지 13승을 거둔 커플스는 멀리서 스윙만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얼마나 스윙이 부드러운지. 젊어서도 그랬다고 하는데 시니어 투어에 와서도 변함이 없다. 그는 그렇고 더그 배런은 누구냐고? 그가 누구인지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뱁새 김 프로도 이름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고. 더그 배런은 그 대회도 월요일 예선전(먼데이라고 부른다)을 통과해 출전한 무명 선수였다.
그런 더그 배런이 세 홀을 남기고 한 타 차 단독 선두가 됐다. 이어지는 16홀 파4는 원 온도 할 수 있는 짧은 홀이다. 하지만 그는 아깝게 파로 마쳤다. 찬스를 놓친 더그 배런은 17홀과 18홀 단 두 홀만 남겨놓고 있었다. 그러자 이미 경기를 마치고 클럽 하우스에서 기다리고 있던 커플스가 드라이빙 레인지로 이동했다. 연장전에 갈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승 경험이 없는 더그 배런이 긴장감을 이기지 못해 실수를 하고 연장전이 벌어질 것 같다’고 뱁새 김 프로도 속으로 예상했다. 마지막 날 무려 아홉 타나 줄여놓고 기다리는 커플스도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시니어 투어에서 우승을 못한 지 제법 오래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오랜만에 찾아온 우승 기회’라고 생각하니 산전수전 다 겪은 그도 가느다랗게 떨렸을 지도 모른다. 17홀은 길고 그린 주변도 까다로운 파3이다. 여차하면 보기를 하는 홀이다. 지난 1992년 프로 골퍼가 됐지만 28년째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더그 배런.
그가 17홀 티잉 구역에 올라섰다. 그랬다. 그는 철저한 무명선수였다. PGA 투어는 물론이고 콘페리 투어(PGA 2부 투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PGA 투어 시절에는 시드(투어를 뛸 자격)도 꾸준히 유지하지 못했다. 번번이 시드를 잃고 큐스쿨을 다시 치러야 했다. 큐스쿨은 퀄러파잉 스쿨을 줄인 말이다. 골프 투어에 참가할 자격을 겨루는 시합이다. 한 두 라운드로 가리는 것이 아니라 많게는 십 여 라운드 이상을 치르기도 한다. 큐스쿨로 뽑는 선수 숫자는 너무 적어서 통과하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다. 투어에서 성적이 부진해서 한 번 시드를 잃고 밀려 내려와서 큐스쿨을 치르면 내로라 하는 선수도 주저앉기 마련이다.
더그 배런은 시니어 투어에 들어오기 전 7년간은 2부 투어 풀 시드마저도 얻지 못하고 간간이 예선을 치러 나가곤 했다. 물론 시니어 투어 풀 시드는 갖고 있지도 못했다. 그가 쉰 살에 PGA 투어 챔피언스에 얼굴을 내민 것은 불과 그 대회 몇 주 전이다. 그런 더그 배런이 대회 첫날 ‘꽁지머리’ 미구엘 앙헬 히메네스와 공동 선두로 경기를 마칠 때만 해도 뱁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름 없는 선수가 첫날 반짝 성적을 내고 이튿날 리더보드에서 사라지는 일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그런데 더그 배런은 조금 달랐다. 우여곡절 끝에 2라운드도 선두로 마친 것이다. 2라운드 중반에는 대회 첫 보기를 기록하더니 몇 홀 연속 갑자기 샷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뱁새는 ‘그러면 그렇지’라고 속단했다.
그런데 딱 그 시점에 번개가 치면서 경기위원회가 경기를 중단했다. 경기위원회는 실시간 일기예보도 참고하지만 번개 감지기도 갖고 있다. 제법 멀리서 낙뢰를 품은 구름이 다가오면 감지기가 ‘삐’ 소리를 낸다. 그러면 경기를 잠시 중단해야 한다. 이 때는 에어 혼을 ‘빠아앙’하고 길게 한 번 울린다. 에어 혼 소리를 들으면 선수는 즉시 경기를 중단해야 한다. 에어 혼을 길게 한 번 울렸는데도 샷을 한 번이라도 한다면? 바로 실격이다. 쏘아 본 사람은 안다. 필드에서 에어 혼을 쏘는 맛을. 넓은 골프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경기위원끼리 무전으로 ‘하나 둘 셋’ 세고 나서 동시에 에어 혼을 쏘는 데. 아차!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더라? 어느 새 지면이 다 찼다. 더그 배런 이야기는 다음 회에 이어가겠다.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