톤은 담담했다. 그러나 장원준(38·두산 베어스)의 목소리에서는 그 이상의 후련함이 묻어 있었다.
장원준은 2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3 KBO리그 정규시즌 삼성 라이온즈와 홈경기에서 올 시즌 첫 승을 거뒀다. 그리고 2004년 데뷔 첫 승을 거둔 이후 19년 만에 통산 130승 고지에 올랐다.
말 그대로 역사를 썼다. KBO리그 역대 11번째, 왼손 투수 중 역대 4번째 130승 기록이다. 37세 9개월 22일로 송진우 전 코치(34세 4개월 18일)를 넘어선 역대 왼손 투수 최고령 승리이자 임창용의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전 KIA 타이거즈·당시 42세 3개월 25일)에 이은 역대 최고령 2위 승리 기록이다.
역사가 될 때까지 험난한 여정이 따랐다. 이날 출전은 2020년 이후 이후 958일만의 선발 등판이고, 2018년 5월 5일 이후 1844일만의 승리였다. 선발 등판을 하지 못하고 승리 투수가 되지 못하는 동안 부진과 부상이 그를 따랐다. 129승이 130승이 될 때까지 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경기 후 만난 장원준은 "승리 투수가 될 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 역할만 하자고 생각했다. 최소 실점 최대 이닝, 5이닝을 버티자고 생각했다. 타선이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해 점수를 많이 뽑아줘 내가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위기도 있었다. 2회 삼성 강한울의 기습 번트를 처리하지 못한 장원준은 집중타를 허용했고, 한 이닝에만 무려 넉 점을 내줬다. 그대로 무너지는 듯 했지만 5이닝을 버텨냈다. 장원준은 "빗맞은 안타도 있었다. 점수를 줄 때 주더라도 도망가는 투구로 더 어렵게 하지 말고 빠르게 승부하려고 했다. 최대한 공격적으로 던졌는데, 4점은 줬으나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8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거뒀던 장원준이다. 누구보다 승리가 쉬웠던 그가 2018년 3승을 거둔 후 다시 1승을 추가하는 데 5년이 걸렸다. 장원준은 "많이 쫓겼다. 빨리 복귀해서 팀에 보탬이 돼야지 생각했다. 2군에서도 너무 급하게 준비했다. 그러다 이렇게 길어졌다"며 "그동안 투구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서 찾는 데 오래 걸렸다. 몸 상태가 예전 폼이 나올 수 없는 수준인데, 좋았을 때 폼을 자꾸 쫓아가려고 했던 게 안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2군에서 추가한 투심 패스트볼도 효과를 봤다. 장원준은 "시범경기 후 2군에 내려갔는데 권명철 투수 코치님이 투심을 던져보는 게 어떠냐 하셨다. 나도 예전부터 생각은 했는데, 하지 못하다가 추천을 받은 김에 연습해봤다. 2군 선발로 던질 때 잘 먹히더라. 투심을 던지다 직구를 던지니 타자 타이밍이 늦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130승 소감을 묻자 "홀가분한 것도 있다. 또 최근 몇 년 동안 불펜을 했는데, 마음 한 구석에는 안되면 그만 두더라도 선발로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올해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후회없이 던졌다"라며 "예전에야 선발로 던진 후 다음 기회라는 게 있었다. 이번에는 안 되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던졌다. 그래서 좀 떨렸다"고 했다.
이제 통산 승수에서 장원준의 위에 있는 배영수 롯데 자이언츠 코치와는 단 1승만 차이 난다. 기록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장원준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