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거느리는 총수들은 공정거래위원회 등 기관과 시민단체뿐 아니라 검찰의 법적인 타깃이 된다. 이에 주로 소송을 당하는 피고인 입장에서 법정에 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총수들이 원고로 소송을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과거 총수들은 법적 문제에 따른 언론 노출에 부담감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총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송이 극히 드물었지만 최근 명예훼손과 관련해 유명 변호사를 앞세워 망설임 없이 소를 제기하고 있다.
4대 그룹 총수 중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가장 적극적이다. 총수의 경우 공인에 가까워 온라인상에서도 연예인들처럼 평가의 대상이 되는데 도가 지나친 경우가 많아 이에 대처하기 위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최태원 회장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 소송은 알려진 것만 해도 3건이다. 모두 동거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와 관련된 악성 루머들에서 비롯되고 있다. 2019년 자신과 김 대표에 대한 비방글을 쓴 네티즌 수십명에 대해 고소장을 냈기도 했다.
2021년에도 최 회장과 동거녀와 관련한 허위사실을 방송한 유튜브 채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올해 1월과 3월에는 김 대표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올린 네티즌을 경찰에 고소한 데 이어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최 회장 측은 네티즌 A 씨가 대형 인터넷 사이트에 동거녀와 관련된 부정적인 언론 보도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올려 명예를 훼손한 점을 들어 31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최 회장 측은 “자극적인 루머들을 짜깁기해 의도가 투명한 게시글을 작성함으로써 악플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며 “피고가 댓글 작성자들의 입을 빌어 원고에게 인신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당시 A 씨는 대기업 회장이 직접 소송을 거는 행위는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막으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기업 회장의 민형사 소송은 자신과 관련된 안 좋은 여론에 재갈을 물리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증거가 확실하고 명예훼손을 입증할 수 있다면 총수들도 소송을 하는 추세”라며 “가족을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욕하는 행위는 참을 수 없다는 명백한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총수와 개인 간의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 싸움 구도로 흘러가게 된다. 총수 측이 거대한 자금을 앞세워 유명 변호인단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잘잘못을 떠나서 법정 싸움에 앞서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총수라도 잘못된 것에 대한 소송은 당연한 권리”라며 “개인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럽고 법정 싸움 끝에 승소해도 변호사 비용 등을 고려하면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A 씨는 사과문을 올리고 다시는 비방의 글을 쓰지 않겠다며 최 회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최 회장 측은 지난 4월 고소를 취하했다.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은 가맹점주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윤홍근 회장의 갑질 의혹을 언론에 제보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가맹점주는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에서 진행된 2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검사가 사실오인과 법리 오해를 주장하고 있지만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고 보기 힘들다”라고 판결했다.
이 같은 우월한 지위에 있는 프랜차이즈 본부의 소송을 막기 위한 제도적인 개선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프랜차이즈들이 패소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소송을 한다고 지적하며 “가맹본부의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프랜차이즈 정보공개서에 소송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SG증권 폭락 사태와 관련 라덕연 투자컨설팅업체 대표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자신의 혼외자 친모를 상대로 공갈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장을 냈다.
김두용 기자 k2young@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