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멘탈’은 어쩌면 픽사 역사상 가장 뜨거운 로맨스로 남을 것 같다. 그간 여러 작품을 통해 우정, 성장, 가족애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왔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가 이번엔 불과 물의 사랑 이야기를 들고 왔다.
‘엘리멘탈’의 배경은 엘리멘트 시티다. 불, 물, 흙, 공기 등 4원소가 모여 사는 이곳은 마치 뉴욕과 같은 코스모폴리탄 시티다. 부모 대에 엘리멘트 시티에 정착한 앰버는 불들이 모여 사는 ‘파이어타운’ 구역을 벗어난 적이 없다. 불은 다른 원소들 사이에서 늘 무언가를 태울까 걱정되는 존재.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늘 받아왔던 앰버의 부모는 자신들의 딸이 같은 불을 만나길 바란다.
엘리멘트 시티에 터를 잡았을 때부터 앰버의 가족은 작은 식료품 가게를 운영해왔다. 앰버는 이 가게를 물려받아 운영하는 게 자신의 의무라 생각한다. 이런 과정에서 앰버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인지, 자신은 왜 그렇게 화를 참지 못 하는지 사유하기는 어렵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어렵게 자신을 기른 부모. 그런 부모의 희생에 보답하는 건 자신의 삶 역시 조금은 희생하는 것뿐이라고 앰버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앰버의 앞에 어느 날 물 웨이드가 나타났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웨이드. 앰버는 거울처럼 자신을 비추는 웨이드를 통해 조금씩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가게 되지만, 여전히 부모 앞에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드러내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출신도 자라온 환경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바라보고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은 지나쳐온 어떤 청춘의 한 페이지처럼 뜨겁고 참 푸르다.
한국계 미국인인 피터 손 감독은 이민자 2세로 뉴욕에서 자라온 자신의 경험을 ‘엘리멘탈’ 곳곳에 녹여냈다. 감독이 직접 겪어온 일들이 담겨 있는 만큼 불, 물, 흙, 공기라는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매우 현실적이다. 부모와 자녀 세대의 가치관 충돌은 비단 이민자 가정에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소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비주얼 역시 주목할 포인트. 불 앰버와 물 웨이드는 픽사 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뼈대가 없는 캐릭터다. 이들의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애니메이터들이 구석구석 공을 들였다. 불, 물, 공기, 흙이라는 요소 본연의 특질을 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영화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원소들이 모여 사는 엘리멘트 시티를 앰버와 웨이드가 탐험하는 장면은 특히 압권이다. 불의 눈으로만 세상을 봐 왔던 앰버와 물의 눈으로만 세상을 봐 왔던 웨이드가 서로의 시각을 공유하면서 펼쳐지는 풍경이 환상적이다. 픽사의 최신 기술력을 확인하는 데 더할 나위 없다. 전체 관람가. 10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