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사의 표시 이후 내홍을 겪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강력한 쇄신 요구에 직면했다. 리더십의 부재 상황에 이어 집행위원장의 성폭력 의혹까지 불거지자 부산국제영화제가 이번 기회를 빌어 대대적인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영화계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있다.
1일 영화계에 따르면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은 조만간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성폭력 의혹과 관련한 권고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앞서 든든은 허문영 집행위원장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A씨의 신고가 접수되자 지난달 30일 긴급 심의위원회를 열고 신고 내용을 검토했다.
든든이 부산국제영화제 측에 해당 내용과 관련한 권고를 하게 되면, 영화제 측은 이와 관련해 공식 조사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영화제 측은 앞서 31일 허 집행위원장의 성폭력 의혹이 일간스포츠 단독 보도로 불거지자 2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진상조사를 포함한 당면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부산국제영화제 측이 허 집행위원장의 의혹에 대한 조사를 제3의 기관에 위탁할지, 영화제 자체적으로 실시할지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문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일련의 일을 허 집행위원장의 개인 문제로 선을 그었다는 점이다.
영화제 측은 공식 입장에서 허 집행위원장 개인 문제가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는 복귀를 기다리기로 하고 사표 수리는 그때까지 보류한다고 밝혔다. 전직 영화제 관계자는 “영화제가 이 사안을 개인 문제로 선을 그었다는 건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 때까지 사표 수리를 보류한 건 다행이지만, 영화제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영화제 관계자가 포함된 인사가 이 문제를 조사할 게 아니라 제3의 기관에 위탁해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번 이사회에서 혁신위를 꾸릴 계획이지만, 이 혁신위에는 영화제 관계자들과 각종 이해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트 이용관 자리를 놓고 다양한 말들이 오가고 있는데다, 허문영 집행위원장도 복귀 여부가 불투명해졌기에, 혁신위 구성원들도 새롭게 구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이번 이사회에서 혁신위의 구성과 기능을 논한 뒤 그에 따라 각종 현안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대대적인 혁신을 이루기 위해선, 이 혁신위부터 이해 관계에서 거리가 있는 인물들로 채워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산영화학과교수협의회는 이날 “작금의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이사회가 혁신위를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면서 “혁신위는 부산 시민과 영화인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추천을 받아 구성해야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어 혁신위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고 이사회의 권한을 혁신위에 이양할 것을 요구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정상적인 개최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정도”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허 집행위원장 복귀를 비롯해 다양한 논의들이 있었지만 의혹이 제기된 만큼 영화제가 환골탈태할 만큼의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허문영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9일 부산영화제 임시 이사회 및 총회가 열리자 이틀 뒤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이사회에서 공동위원장 직제가 신설되고 조종국 운영위원장이 위촉된 데 대한 불만의 표시로 여겨졌다. 이후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도 사태가 수습되면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영화제작가협회와 여성영화인모임, 부산의 각 영화 단체들은 허문영 집행위원장의 복귀와 영화제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부산영화제도 임시 이사회를 열고 허 집행위원장의 복귀와 조종국 운영위원장의 자진 사퇴 권고, 이용관 이사장이 올해 영화제를 끝으로 사퇴하는 것을 골자로 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후 31일 허 집행위원장과 이용관 이사장 등이 만나 허 집행위원장의 복귀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허 집행위원장의 성폭력 의혹이 보도되자, 허 위원장은 만남을 취소하고 영화제에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최종적으로 사퇴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과연 부산국제영화제가 일련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영화계 안팎의 우려가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