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목받는 신종 스포츠가 있다. 바로 '뺨 때리기'다. 누구는 '그게 무슨 스포츠야'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이다. 심지어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단체 UFC가 개최하고 스포츠 전문채널에서 생중계한다.
UFC가 운영하는 대회는 '파워 슬랩(Power Slap)'이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상대 뺨을 손바닥으로 때리면 된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때리진 않는다. 나름 엄격한 룰이 적용된다.
파워슬랩의 경기 방식은 1대1 개인전이다. 선수는 공격자(Striker)와 수비자(Defender)로 불린다. 한 번씩 번갈아 가면서 공격에 나선다. 누가 먼저 선공을 할지는 동전던지기로 결정한다.
경기는 UFC와 비슷하다. 채점에 승패를 가리는 판정승과 KO승, TKO승, 실격(DQ)승으로 구분된다. 경기 라운드도 UFC와 마찬가지로 기본 3라운드에서 최대 5라운드까지 열린다. 체급 구분도 UFC 규정을 따른다.
뺨 때리기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손바닥으로 턱을 가격하는 게 핵심이다. 복싱이나 UFC에서 펀치나 킥으로 상대 턱을 공격해 뇌에 충격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비자는 상대 공격을 막거나 피할 수 없다. 뒷짐을 진 채 온전히 충격을 받아내야 한다.
참가자는 손목 또는 팔꿈치 보호대 같은 장비를 착용할 수 없다. 얼굴 또는 머리카락에 물을 묻히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치아를 보호하기 위해 마우스피스 착용은 의무다. 또한 공식 주치의가 참가자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 소량의 바셀린을 얼굴에 바를 수는 있다.
손톱도 심판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 끝 아래까지 짧게 깎아야 한다. 머리카락은 얼굴을 가리지 않도록 뒤로 넘겨야 한다. 대신 수염은 허용된다. 손바닥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역도나 체조 선수들이 사용하는 탄산마그네슘을 손에 바를 수도 있다.
공격자는 두 발을 바닥에 붙힌 채 강하게 뺨을 때린다. 점프를 하거나 스텝을 밟아도 반칙이다. 손바닥이 아닌 손등이나 손목 등 다른 부위로 가격하는 것 역시 실격이다. 더 큰 파워를 내기 위한 와인드업 같은 사전 동작도 역시 반칙이다.
뺨을 얻어맞은 수비자는 60초 시간이 주어진다. 그 안에 정신을 차리고 충격에서 회복해야 한다. 제 자리에 서야 다음 반격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 안에 회복하지 못하거나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경기가 끝난다.
어느 한 쪽이 KO되지 않으면 부심이 옆에서 채점을 한다. 상대에게 얼마나 큰 대미지를 줬는지를 따진다. 타격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동작의 정확성도 확인한다. 세밀한 판정을 위해 비디오 판독도 이뤄진다.
뺨 때리기 대회 역사는 길지 않다. 물론 오래전부터 지하 세계에서 이런 방식 경기가 열리긴 했다. 하지만 공식 대회는 2019년 러시아에서 열린 ‘시베리안 파워쇼(Siberian Power Show)’가 처음이다.
당시 우승자는 바실리 카모츠키라는 인물이었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는 얼떨결에 참가했다가 우승까지 차지했다. 엄청난 파워로 상대를 한 방에 쓰러뜨리는 모습은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다. 우승 상금은 우리 돈으로 약 55만원에 불과했지만, 그는 '벼락스타'가 됐다.
UFC의 데이나 화이트 대표는 이 대회를 보고 '돈 냄새'를 맡았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미국에서 ‘파워 슬랩'을 정식으로 개최했다. 메이저리그(MLB) 경기 등을 중계하는 미국 케이블 스포츠채널 TBS에서 생중계했다. 첫 대회가 열린 라스베이거스의 네바다주 체육위원회도 뺨 때리기 대회를 정식 스포츠로 승인했다. 1회 대회가 화제를 모으자 지난달 24일부터 시즌 2를 곧바로 시작했다.
당연히 논란은 있다. 참가자 건강에 큰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너무 가학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뺨 때리기 대회는 단순 쇼일 뿐 스포츠로 인정할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외부적 충격을 통한 실신을 자주 경험하면 치매 및 만성외상성 뇌병증, 퇴행성 뇌 질환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 2월 미국의 만성 외상성 외병증 최고 권위자이자 2015년 개봉된 영화 '컨커션( Concussion·뇌진탕)'의 실제 주인공인 베넷 오말루 박사도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그는 "뺨때리기 대회는 매우 멍청하고, 안전하지 않으며, 원시적이다"라며 "참가자가 언제든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 당장 대회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의회도 이 대회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자체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도 뺨때리기 대회는 점점 관심을 넓혀가고 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자극적인 콘텐츠를 원하는 대중과 일부 미디어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고 있다. 전 UFC 헤비급 챔피언 팀 실비아 등 '진짜 파이터'들도 참가를 선언하고 있다. 최근에는 뺨때리기의 변종인 '엉덩이 때리기 대회'까지 나올 정도다.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근육질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도 열렬한 지지자다. 자신이 개최하는 보디빌딩 대회 '아놀드 클래식'에 뜬금없이 뺨때리기 종목을 추가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가 맞지만 않는다면 뺨 맞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는 반대하는 목소리를 가볍게 무시한다. 그는 "복싱 선수들은 한 경기에 300~400번 펀치를 맞는다. 그것에 비하면 뺨때리기는 아무것도 아니다"며 "우리는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보는 이가 불편하다면 대회를 보라고 강요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UFC가 주최하는 '파워슬랩'의 우승 상금은 1만 달러(1300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승을 차지하면 단숨에 유명인사가 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파워슬랩' 대회를 강조하는 모토는 'No pain, No gain'이다. 고통 없이 얻는 것도 없다는 것을 뺨때리기 대회는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