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영 씨는 제게 독보적인 이미지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 영화 ‘영어 완전 정복’를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죠. 감정을 과하게 분출하는 것도 명연기지만, 아무것도 아닌 대사를 툭툭 던져내는 것도 명연기에요. 이나영 씨는 순수하고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해요.”
이종필 감독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 인터뷰에서 같이 말했다. 이종필 감독은 구체적인 대본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도 왠지 모르게 이나영이 작품에 출연해주길 바랐다며 웃었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박하경 여행기’는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토요일 딱 하루의 여행을 떠나는, 국어선생님 박하경(이나영)의 예상치 못한 순간과 기적 같은 만남을 그린 명랑 유랑기.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좋다는 반응이 많아요. 지인들 모시고 소박하게 상영회를 했는데 손님으로 허진호 감독님이 오셨어요. 제가 배용준, 손예진 주연 ‘외출’ 촬영팀 막내였거든요. 상영 끝나고 가려고 하는데 누가 주차장에서 붙잡아서 봤더니 허진호 감독님이셨어요. 너무 귀엽고 좋았다고 해주셨어요. 넷플릭스 ‘D.P.’ 한준희 감독도 사실 잘 모르는데 연락을 주셨어요.”
이나영을 캐스팅하게 된 이유를 묻자 “초반 이 프로젝트는 막연한 무언가였다. 손미 작가랑 대본도 나오기 전에 브레인스토밍을 하듯 서로 아이디어를 던졌다.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이나영 씨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어 완전 정복’을 본 후 이나영을 캐스팅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이 감독. 그는 “이 영화를 오랜만에 봤는데 이나영 씨가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 연출가로서 영화를 볼 때 여러 가지가 보이는데, 이나영 씨는 쉽지 않은 연기를 너무 잘하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행을 주제로 각각 다른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낸 ‘박하경 여행기’는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여행지가 아닌 일상 속 편안함을 주는 장소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종필 감독과 제작진은 각 에피소드별 내용과 메시지를 담기에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땅끝마을 해남부터 바다 건너 제주까지 다니며 로케이션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역마다 분배가 어느 정도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느 화는 꼭 여기여야만 하는 곳도 있었죠. 특히 1화 해남이 그랬는데, 작가가 실제로 머물렀던 곳이에요. 주지스님 방귀 소리를 들은 것, 숲을 산책하다가 확 트인 바다를 본 것도 작가님 경험담이에요.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시기가 맞았고, 대전은 안 놀러 갈 것 같지만 막상 가면 좋은 곳이라 가게 됐어요. 제주도는 계산적인 거였어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즈음 제가 작가님과 제주도에서 할머니와 아이를 봤던 경험을 넣어놓으셨더라고요.”
구교환 섭외에 대해 이 감독은 “‘탈주’ 촬영 중이었는데, 현장에서 구교환이 보이길래 이나영과 하게 됐다고 했더니 뭐 할 거 없냐고 물어보더라. 구교환이 ‘나도 끼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구교환과는 예전에 독립영화 할 때도 만났던 사이라 자연스럽게 캐스팅하게 됐다. 이걸 이나영에게 전했더니 구교환의 단편 작업들도 봤다고, 좋아하는 배우라고 했다”고 비하인드를 전했다.
‘박하경 여행기’는 각 화마다 20~30분 정도의 미드폼 형식으로 지하철, 버스, 카페 언제 어디서든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이종필 감독은 “영화는 줄이는 게 일이다. 한 프레임이라도 줄이는 작업을 했다면, 이 작품은 웨이브 측과 얘기한 시간이 있었다. (촬영하면서) 영화 호흡으로 하니까 안 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여유를 둔 부분도 있다”고 전했다.
또 “처음 이 작품의 소재를 들었을 때 ‘굉장히 느리겠다’라는 선입견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선입견을 깨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며 “느린 듯 하지만 리듬감 있게 볼 수 있는 계산이 깔려있다. 호흡은 챙겨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이종필 감독은 ‘박하경 여행기’ 시즌2를 위해서는 시청자의 뜨거운 반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즌2는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며 8회까지 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도 덧붙였다.
“시즌2라고 하니까 ‘오징어 게임’이 떠오르네요. 아마 ‘오징어 게임’도 시즌2를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시청자들의 요구가 강력해서 하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오징어 게임’만큼은 아니더라도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감지된다면 시즌2가 나오지 않을까 해요. 하게 된다면 정말 잘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