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1억명이 즐기며 대표 e스포츠로 자리매김한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지난해 누적 매출 3조원을 돌파한 컴투스의 '서머너즈 워'.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두 게임의 성공 뒤에는 모든 나라의 플레이어를 포용하는 '현지화' 전략이 있다.
회사의 매출보다 플레이어를 최우선으로 하는 마음가짐은 기본이다. 1인 미디어를 접목해 놀이를 넘어 문화로 자리매김한다면 K게임이 진정한 글로벌 강자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현지 맞춤형 마케팅·서비스 효과 '톡톡'
7일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 하모니홀에서 '2023 K게임 포럼: 글로벌 성공의 길을 묻다'가 열렸다.
일간스포츠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데일리·이코노미스트가 후원한 이번 K게임 포럼은 오랜 도전에도 글로벌에서 변방에 머물러 있는 한국 게임사들이 세계 중심에 서기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LoL 개발사인 라이엇게임즈에서 월드와이드 퍼블리싱 대표를 맡았던 오진호 비트크래프트 파트너와 글로벌 히트작 서머너즈 워 개발사인 컴투스의 한동규 사업1본부장, 글로벌 라이브 플랫폼 트위치의 이운진 파트너십 매니저 등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글로벌 경험을 공유했다.
오진호 전 라이엇게임즈 월드와이드 퍼블리싱 대표는 서로 다른 문화권의 플레이어(게이머)들을 전장으로 모을 수 있었던 노하우를 공유했다.
라이엇게임즈는 본사와 지사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했다. 통상 글로벌 게임사는 R&R(역할과 책임)이 뚜렷하지 않아 협업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생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사는 어디에서나 동일한 게임 경험을 보장하는 기준을 수립하는 데 집중하고, 지사는 온전히 권한을 위임받아 현지에 특화한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본사의 간섭을 없애기 위해 보고 체계는 단일화했다. CEO(최고경영자)와 인터내셔널 조직, 각 지사로 이어지는 소통 채널을 구축했다. 전사적인 차원의 프로젝트를 제외하고 현지 마케팅 전략은 각 지사가 알아서 수립하는 시스템이다.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참신한 아이디어의 마케팅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는 래퍼 머쉬베놈과 협업한 'TFT 모바일' 홍보 영상이다. '두둥 등장'이라는 중독성 있는 가사로 호응을 얻으며 유튜브 500만뷰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 'ㄷㄷㄷㅈ'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남미 지사는 명문 축구팀 시바스의 e스포츠팀을 창단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진호 전 대표는 "한국 지사를 맡았을 때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었다"며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면 '두둥 등장'이라는 가사를 이해시키지 못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컴투스도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서머너즈 워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서비스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미국·중국·일본·대만·유럽·동남아 등 해외 곳곳에 지사를 뒀다.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겨도 현지 지사가 24시간 언제든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 출시한 게임이지만 단일 빌드로 설계해 신속한 패치가 가능한 것도 강점이다.
한동규 컴투스 사업1본부장은 "서머너즈 워는 하나의 게임 빌드를 바탕으로 신규 콘텐츠 추가나 버그 수정을 위한 긴급 패치 등의 운영을 신속히 진행하고 있다"며 "특히 게임 출시 혹은 업데이트 시점의 국가 간 차이를 최소화해 6개의 지역권과 4개의 시간대에 분산한 전 세계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덕분에 전체 누적 매출 가운데 약 90%(약 2조7150억원)를 해외에서 거뒀다. 이는 스마트폰 약 270만개, 화장품 약 2010만개, 봉지라면은 무려 27억1500만개에 달하는 수치다.
플레이어 없으면 게임도 없다
이처럼 글로벌 게임사로 떠오른 라이엇게임즈와 컴투스 모두 플레이어를 향한 '진심'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오진호 전 대표는 "라이엇게임즈는 주주도 경영진도 게임도 아닌 플레이어에 진심"이라며 "회사의 모든 고민은 '플레이어가 좋아해?'라는 질문에서 시작하고 끝난다"고 말했다.
한국 플레이어들의 특성을 묻는 질문에는 "수준이 높은 만큼 엄격하다. 패치를 하면 최악의 평점을 주는 곳이 한국"이라면서도 "그런데도 가장 열정적으로 게임을 즐긴다. 해외 플레이어들이 한국 서버에 접속하는 이유"라고 했다.
니콜로 러렌트 라이엇게임즈 CEO도 인터내셔널 총괄 시절 한국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하며 PC방 문화를 체험한 다음에 지사를 설립했다.
한동규 본부장 역시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플레이어 중심의 게임 콘텐츠를 잘 만들어야 한다"며 "이후 글로벌 마케팅을 진행할 때 내가 그 지역에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 더 현지화에 신경 쓰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게임 스트리머 마케팅, 방송 가이드부터
급격하게 확산한 1인 미디어는 K게임이 더 효과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창구다. 이제는 라이브 시청자 수가 게임의 인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
이운진 트위치 파트너십 매니저는 "라이브 스트리머는 개발사나 유통사가 직접 유통하는 콘텐츠를 선호한다. 저작권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며 "초대형 인기 신작이나 라이브 게임이라면 쇼케이스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방송 가이드가 없는 게임은 스트리머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모바일 게임은 PC나 콘솔과 달리 라이브 방송을 내보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때 PC 클라이언트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운진 매니저는 "게임사가 라이브 플랫폼을 활용해 마케팅을 할 때 직접 소통하지 않고 대행사에 모두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정작 플랫폼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를 때가 있다. 가능한 게임사가 플랫폼과 접점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한국 콘텐츠 수출 가운데 6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 산업은 최근 침체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기대했다.
오진호 전 대표는 "모바일 게임이 대세가 되면서 '게임메카'였던 한국이 잊혀지고 있다"며 "한국 게임사들의 능력을 보면 두 번째 봄이 오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