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얼마 전 서로 아끼는 후배 둘과 한양도성 순성길을 걸었다. 하늘이 어찌나 맑은지 서울 곳곳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였다. 숨이 살짝 가빠질 때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아름드리 나무 옆에 멈춰 서서 다리를 쉬었다. 단단한 나무였다. 나무 키가 한참 커서 눈 높이에 가지가 없었다. 밑동만 보고는 떡갈나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보니 웬걸! 흰 꽃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흔히 ‘아카시아 꽃’이라고 부르는 그 꽃이.
문득 어려서 큰 통 가득 담은 ‘아카시아 꿀’ 단지에서 몰래 꿀을 두 어 숟갈 가득 떠 먹고는 속이 아렸던 기억이 났다. 못하게 하는 짓을 하면 꼭 탈이 난다. 꿀 이야기를 했더니 후배가 ‘아카시아 껌’ 이야기를 했다.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카시아 껌”이라는 씨엠(CM)송까지 기억해 내면서. 그런데 나무 옆에 푯말이 하나 있었다. 푯말엔 ‘아까시나무’라고 써놓았다. ‘아카시아’가 아니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바로 났다.
늦은 봄에 꽃을 보고 그 꿀도 먹는 나무는 아카시아가 아니라 아까시라는 말이. 아까시나무를 아카시아라고 잘못 부르고 있는데 두 나무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도. 누가 처음 잘못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왜 너나 없이 아까시를 아카시아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는 다들 짐작한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중략.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이 원수이다.
느닷없이 웬 아카시아 이야기냐고? 골프에서도 비슷한 꼴이 나고 있어서이다. 바로 ‘라운딩’이란 말 말이다. ‘라운드’가 맞는 말이다. 라운드를 여기 저기에서 라운딩이라고 말한다. “어제 라운딩을 하러 갔는데~”하는 식으로 말이다. 틀린 말이다. ‘라운드를 하러 갔는데”라고 말하는 것이 맞다.
얼마 전에는 인지도 높은 신문 기사에 기자가 버젓이 ‘라운딩’이라고 쓴 것을 보기도 했다. 골프 채널에 나오는 출연자 중에서도 라운딩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따금 있다. 이미 여러 사람이 꼬집었기 때문에 왜 라운드가 맞고 라운딩이 틀린 지 굳이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다. 그래도 혹시 한 사람이도 더 바른 표현을 쓰기를 바라니 설명을 하겠다.
‘라운드’에 뭔가를 하고 있다는 뜻인 ‘잉’을 붙이면 얼핏 듣기에는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런데 ‘라운딩을 한다’고 말하면 ‘라운드를 하는 것을 한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라운드를 한다’가 맞다. 그까짓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묻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아직 뱁새 김용준 프로 칼럼 애독자가 아닌 것이 틀림 없다. 중요하다. 바른 표현을 쓰면 신기하게 골프가 는다. 골프를 더 잘 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있다. 뱁새 김 프로가 장담한다. 뱁새를 믿고 한 번 해보기 바란다.
바른 말을 쓴다는 것은 골프를 조금 더 진지하게 대한다는 말이 된다. 진지하게 골프를 치면 당연히 더 잘 칠 확률이 높다.
사진=게티이미지 내친걸음 다른 표현도 바로 잡아보면 어떨까? 바로 ‘해저드’말이다. 이건 독자 잘못은 아니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쓰던 표현을 지난 2019년에 바꿨기 때문에 누구 탓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해저드’가 아니라 ‘페널티 구역(Penalty Area)’로 바꿨으니 새 표현을 쓰기 바란다. ‘해저드 티’는 자연스럽게 ‘페널티 구역 티’가 되는 셈이다. 세계 골프 규칙을 주관하는 두 단체가 35년 만에 골프 규칙을 바꾸면서 심사숙고 해서 ‘페널티 구역’으로 바꾼 것이다.
골프 규칙은 영국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 두 단체가 관장한다. 뱁새는 갖다 대지도 못할 만큼 식견이 깊은 이들이 모인 단체이다. 두 단체가 규칙을 현대화 하면서 용어 몇 가지도 바꾸기로 정하기까지 무려 7년을 숙의했다고 한다. 부디 골프 TV 방송 출연자나 제작자도 이 칼럼을 본다면 애써주기 바란다. TV는 힘이 워낙 막강해서 TV에서 한 번 ‘해저드’라고 하면 뱁새가 아무리 ‘페널티 구역’이라고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 ‘라운드’도 마찬가지이고.
‘라운드’와 ‘페널티 구역’ 말고는 혹시 고쳐 말할 것이 없느냐고? 역시 애독자는 다르다. 제법 있다. 먼저 ‘티 박스’는 ‘티잉 구역’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홀컵’은 ‘홀’이나 ‘컵’으로 부르는 것이 맞고. 그리고 캐디는 ‘언니’가 아니다. 프로 골퍼 중에서도 캐디를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이 제법 있다. 듣는 사람이 유쾌하지 못한 틀린 표현이다.
라운드를 시작할 때 캐디에게 이름을 물어서 ‘누구 누구 캐디’라고 부르거나 성만 붙여서 ‘김 캐디’나 ‘이 캐디’ 하는 식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캐디를 점잖게 부르면 옆 사람이 금방 안다. 골프를 진지하게 대하거나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칼럼에 쓰긴 써도 걱정은 된다. 과연 고칠 수 있을까 하고. 하도 오랫동안 여러 사람이 쓰다 보니 그렇다. 이러다가 ‘라운딩’이 표준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오토바이처럼.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