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환은 자타공인 슬러거이다. 2018년 홈런 44개를 터트려 데뷔 첫 홈런왕에 올랐다. 외야가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40홈런을 넘긴 건 1998년 타이론 우즈(당시 OB 베어스·42개)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국내 선수로는 처음이었다. 그해 장타율이 0.657. 그런데 올 시즌 김재환의 장타율은 0.377(12일 기준)까지 떨어졌다.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김재환의 개인 지표는 2021년부터 꾸준히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5할대 장타율(0.460)이 무너졌고 올 시즌엔 4할대마저 위태롭다. A 구단 타격 코치는 김재환의 부진을 두고 "몇 년 사이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rotational hitting system·허리 회전)이 더욱 강해진 모습"이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미국에서 타격 이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중심 이동에 포커스를 맞춘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weight shift system)과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이다.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과 비교했을 때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은 순간적인 허리 회전력을 이용, 강한 타구 생산에 이점에 있다.
A 구단 타격 코치는 "좋은 타자들은 중심 이동(웨이트 시프트 시스템)과 회전(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이 섞여 있다. 김재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회전으로만 강하게 치려고 하니까 (이상적인) 방향성이 잘 나오지 않는 거 같다"며 "좋았을 때는 (밀어치는 것도 잘해) 왼쪽 타구가 많았는데 중심 이동이 원활하지 않으니 (타구가) 오른쪽으로만 향하는 방향성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당겨치는 타구가 많으니, 타석마다 수비 시프트가 걸린다. 강한 타구로 수비 시프트를 깨야 하지만 힘이 잘 실리지 않으니 수비 그물에 걸린다. 장타율에 타율까지 급락한 이유다.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 에이징 커브(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며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 얘기도 나오지만, 김재환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히는 건 '부상'이다.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은 강한 허릿심과 탄탄한 하체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김재환은 무릎 상태가 좋지 않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일단 많이 뛰어야 한다. 뛰는 건 스포츠, 야구의 기본이다. (김재환의) 무릎 상태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된다"며 "몸의 회전력으로 치지만 하체 스피드가 떨어지면 공에 대응하는 스피드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승엽 감독은 KBO리그 통산 467홈런을 기록한 강타자다. 김재환과 같은 '왼손 거포'였던 만큼 누구보다 그의 상황을 잘 이해한다. 이 감독은 "트레이닝 파트에서도 유심히 체크하고 있다. 조금씩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공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타이밍이 엇나가면 볼카운트가 몰리고 2스트라이크 이후 범타나 삼진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재환의 부진으로 두산은 타순 계획을 수정했다. 개막전만 하더라도 양의지(5번) 앞에 김재환(4번)을 세웠다. 양의지와 상대하기 꺼린 투수들이 김재환과 승부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김재환이 슬럼프에 빠지면서 효과가 미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1일 외국인 타자 호세 로하스가 2군으로 내려갔다. 김재환의 장타가 터지지 않으면 두산의 중심 타선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