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 블로커(센터) 윤봉우(41)는 배구 선수로 30년 뛰면서 네트를 두고 수만 번 점프했다. 신장 2m의 그는 배구 인생에서 쉽게 도달하지 못할 것 같던 세 번의 점프에 성공했다.
윤봉우는 14일 서울시 중구 순화동 KG타워 지하 1층 하모니홀에서 열린 '2023 IS 스포츠마케팅 써밋 아카데미' 강연자로 나섰다. 1~2강 김성근 감독-유희관에 이어 스포츠 선수 출신으로 세 번째 단상에 섰다.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그는 차분한 어조에 막힘 없는 입담으로 강연했다.
2002년 현대캐피탈에 입단한 국가대표 출신 윤봉우는 프로 원년부터 V리그에서 뛰며 최다 출장 5위(449경기) 블로킹 득점 4위(907점)를 기록했다.
윤봉우는 2015~16시즌 플레잉 코치로 활약했다. 그는 "오전 8시에 출근해 업무 보고와 영상 분석, 훈련까지 코치와 선수의 역할을 다하면 밤 11시였다"라고 회상했다. 시즌 종료 후 은퇴 및 코치직을 제의받았다. 윤봉우는 거절했다. 선수로 더 뛰고 싶었다. 윤봉우는 "지인의 99%는 만류했다"고 한다. 명문 구단에서 안정적인 지도자 입문을 발로 걷어찼기 때문이다. 윤봉우는 "현대캐피탈에서 은퇴할 줄 알았는데"라며 "후배들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구단이 대승적으로 보내줬다"고 회상했다. 그의 첫 번째 큰 도전이었다.
윤봉우는 이후 호랑이 신영철(현 우리카드) 감독을 따라 한국전력과 우리카드에서 2년씩, 총 4년을 더 뛰었다. 신 감독은 베테랑 윤봉우가 봄 배구와 거리가 멀었던 팀의 중심을 잡아주길 바랐다.
윤봉우는 2019~20시즌 종료 후 '이 정도면 열심히 했다'고 여겨 은퇴를 고민했다. 그때 일본 구단(울프독스 나고야)에서 입단 제의가 왔다.
윤봉우는 두 번째 도전을 결심했다. 남자 배구 선수로는 마지막 해외 진출 선수다. 윤봉우는 "V리그의 시스템과 대우가 상당히 좋아 굳이 해외에 나가려는 선수가 없다"면서 "난 배움을 향한 갈망이 컸다"고 했다. 이어 "우리보다 신장이 작은 일본 선수들이 우리 대표팀을 넘어선 지 5~6년 됐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가족을 두고 혼자 떠난 일본에서 윤봉우는 모든 것을 홀로 해결했다. 코로나19로 비자 발급도 힘들었고, 일본어도 할 줄 모르는데 식사부터 이동까지 모든 것이 힘들었다. 그는 "일본 배구 선수들은 각자 이동한다. 원정 경기를 마치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열차를 타고 집(나고야)에 오면 밤 8~9시가 된다. 정말 눈물겨운 저녁밥을 혼자 먹었다. 가끔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 싶더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전력 분석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전했다.
윤봉우는 현재 직업이 세 가지다. 배구 전도사로 활약한다. 글을 쓰고, 마이크도 잡는다. 윤봉우 배구 인생의 세 번째 도전이다.
윤봉우는 배구 아카데미 이츠발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신장이 큰 유소년 대부분은 농구를 하더라. 많은 꿈나무가 배구계로 유입됐으면 하는 바람에 시작했다"며 "유소년 배구 선수가 늘어나지 않으면 몇 년 안에 배구가 쇠퇴할 것으로 여겼다"고 말했다. 이때 역시 주변에서 만류했다. 역시나 처음 문을 열고 3개월 동안 회원은 단 1명뿐이었다. 어느덧 회원은 200명까지 늘었다. 그는 "키가 크길 바라는 성장기 아이들은 물론 20대 여성까지 회원"이라고 소개했다. 은퇴 후 갈 곳이 없던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터주고 싶었는데, 현재 지도자로 8명이 몸담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한 달에 한 번 글도 기고하고, 방송사 해설위원으로도 팬들을 만난다. 최근 한국배구연맹(KOVO)이 주최한 통합 워크숍 해외 우수 지도자 초청 포럼에서 토론자로 나서기도 했다. 또한 지난달 흔치 않게 국제배구연맹(FIVB) 레벨1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그는 "배구 노트만 40권이고, 15테라바이트의 영상 자료를 갖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