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C2C(개인 간 거래) 생태계의 급격한 확산에 중고거래 사기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대담해졌다. 과거 가짜 안전결제 링크로 유도하는 데 그쳤다면 최근에는 포털 계정 도용과 유통 대기업의 이름을 내건 홈페이지 개설 등 수법이 악랄하다 못해 기발하다.
정부와 업계의 감시망은 무용지물이다. 피해자들은 "내가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입을 모으는데, 플랫폼은 경찰 조사를 안내할 뿐 안전장치 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본인인증 계정도 못 믿는다대전광역시 서구 정림동에 거주 중인 이 모 씨(32)는 지난 9일 중고나라에서 새 제품 가격이 95만원부터 시작하는 '아이폰13' 미니 모델을 61만원에 판다는 글을 보고 거래하려다 사기를 당했다.
이 씨는 "본인인증을 완료한 계정이고 거래내역과 '더치트'를 확인했더니 이상이 없어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알려준 계좌로 이체했다"고 말했다.
더치트는 2006년부터 운영 중인 사기 피해 정보 공유 앱·웹사이트다. 대부분의 중고거래 이용자들이 구매 전 이곳에서 상대방을 조회한다.
중고나라와 번개장터 등 국내 주요 중고거래 플랫폼들은 구매자가 물건을 받아본 뒤에 판매자에게 이체한 돈을 지급하는 안전결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휴대전화로 본인인증을 한 계정은 믿어도 될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있어 간편하고 수수료가 없는 계좌이체를 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기에 쓰인 계정은 포털의 보안 체계가 탄탄한 만큼 해킹보다는 돈을 주고 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 제보자는 자신이 즐기는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공유했는데, 중고거래 후기와 평점이 좋은 계정을 찾는 내용이었다.
글 작성자와의 대화 내용을 보면 사기 행각으로 모은 돈은 스포츠 도박 등에 탕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깨끗한 계정 하나만 구하면 경찰의 '사이버안전지킴이'나 중고나라 '사기 이력 조회' 등은 사기범들 입장에서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이런 계정 도용 사례와 관련해 네이버 관계자는 "조사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지만 계정을 양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며 "법적 처벌도 회사가 하는 게 아니라서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네이버는 운영 정책에서 '회원은 본인의 계정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양도·대여 또는 담보로 제공할 수 없으며,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 그 사용을 허락할 수도 없다'고 규정했다.
사기 신고하자 협박까지포털의 허점을 파고든 중고거래 사기범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대상을 더욱 세분화했다.
스마트폰과 게임기 등 자주 거래되는 물건을 넘어 캠핑용품과 공구 등 마니아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해 의심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곳까지 손을 뻗었다. 가격은 너무 싸 보이지 않도록 제시하는 치밀함까지 보인다.
서울 중랑구에 사는 길 모 씨(43)는 지인의 소개로 회원 약 124만명의 네이버 카페 '초캠장터'에 가입했다. 캠핑이 취미였던 그는 고싸머기어 마리포사 배낭을 판다는 글을 보고 25만원을 이체했지만 이후 판매자는 자취를 감췄다.
길 씨는 "중고나라는 사기꾼이 많다는 얘기에 걱정했지만, 초캠장터는 캠핑장비 전문이라 안심을 한 것 같다"며 "하나도 아닌 두 세트를 구성품과 함께 가지런히 찍은 사진을 보고 속았다. 오랫동안 봐온 제품이라 빨리 거래하고픈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길 씨가 더치트에 신고하자 판매자는 협박성 댓글을 달았다.
환불해 주지 않겠다고 확답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반대로 길 씨를 허위사실 유포로 신고하겠다고 몰아세웠다. 불법으로 어렵게 구한 계정인 만큼 최대한 유지해 중고거래 사기에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의 40대 송 모 씨도 지난 10일 중고나라에서 20만원이 조금 넘는 밀워키의 무선 광택기를 사려다 돈을 날렸다.
송 씨는 "신품 대비 20%가량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해 크게 의심을 하지 않았다"며 "안심번호는 본인인증을 완료한 중고나라 회원에게 부여하는 점도 생각했다"고 했다.
플랫폼 성격에 따라 사기 유형에는 차이가 있었다. 로컬 기반 직거래 위주인 당근마켓에서는 대면할 필요가 없는 모바일 상품권이 사기범들의 타깃이다.
지난 15일 모바일 쿠폰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소액 사기를 당한 부산시 동래구 정 모 씨(28)는 당근마켓에 공문을 발송해 줄 것을 경찰에 요청한 상황이다.
정 씨는 "당근마켓은 고객센터도 없고 온라인에 문의하면 인공지능(AI)이 주는 답변이 전부다. 전화 연결도 힘들다"며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해 주의를 당부하는 글을 올렸는데 오히려 활동 중지와 게시글 삭제 조치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당근마켓은 워낙 이용자가 많아 유선으로 일일이 고객 불편을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라는 입장이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월평균 1800만명의 이용자가 1500만건 이상의 글을 올리고 있다"며 "모든 문의를 전화로 응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람의 눈과 손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균등한 고객 대응과 신속한 처리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모듈화한 프로세스와 기술이 방향성"이라고 했다.
대기업 베낀 가짜 쇼핑몰도어린 이용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아이돌 콘서트 티켓 사기가 판치고 있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사는 김 모 양(18)은 지난 13일 트위터에 세븐틴 콘서트 티켓이 실제 가격보다 훨씬 싸게 올라와 돈을 보냈는데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다. 인터파크 앱 화면을 교묘하게 수정한 인증사진 때문에 속을 수밖에 없었다.
사기범들은 중고거래에 악용한 계정으로 대기업을 사칭한 가짜 웹사이트까지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 쇼핑에서도 조회되는 '롯데 아웃렛'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는 롯데쇼핑의 사업자등록번호도 베꼈다. 신용카드 결제는 불가하며 무통장 입금만 받는다.
네이버에서 냉장고 모델명를 입력해 최저가를 제시한 것을 보고 결제했다가 100만원이 훌쩍 넘는 사기를 당한 피해자도 있다.
해당 사이트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AI 안내 음성까지 구현했다. 연락이 닿은 젊은 남성에게 "이곳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정말 롯데가 운영하나"고 물었더니 "물류 창고다. 문자를 보낼 테니 확인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 제보자에 따르면 최근 전자지급결제대행(PG) 카드단말기 등록을 요청했다가 정보가 거짓인 것이 들통나 심사에서 떨어졌다.
피해자들의 신고에도 해당 웹사이트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우리도 피해자"라며 "찾아낸 사이트들을 유관 기관에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등 범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