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31·토트넘)이 엘살바도르 골문을 정조준한다. 무대는 20일 오후 8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A매치 친선경기다. 나흘 전 페루전에서 벤치를 지켰지만 그는 이번 경기에 조커로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클린스만호 첫 승을 이끌 ‘에이스의 귀환’이다.
페루전에서 손흥민은 스포츠 탈장 수술 여파로 휴식을 취했다. 지난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종전을 마친 뒤 수술대에 올랐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주 이상 회복 기간을 거쳤으나 100% 컨디션을 보여주긴 어려웠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대표팀 감독도 선수 보호 차원에서 손흥민을 기용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그가 A매치에 소집되고도 출전하지 않은 건 종아리 부상 여파로 관중석에서 지켜봤던 지난 2021년 9월 레바논전 이후 처음이다.
손흥민은 팀의 쓰라린 0-1 패배를 지켜봤다. 결과만큼이나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도 컸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그는 “내가 제일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엘살바도르전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상황을 지켜보면 될 것 같다”며 복귀를 바랐다.
다행히 손흥민은 엘살바도르전 대비 훈련을 모두 정상적으로 소화했다. 페루전을 앞두고는 회복에 집중하고 일부 훈련에서 제외됐던 걸 돌아보면 긍정적인 신호다. 클린스만 감독도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선발까지는 아니더라도 후반 교체 출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내일(20일)도 손흥민은 선발로는 나가지 않는다. 후반전에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봐야겠지만 후반 교체 출전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 나도 운동장에서 손흥민이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승리가 간절한 클린스만호엔 든든한 소식이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대표팀은 아직 3경기째 승리가 없다. 3경기 모두 홈에서 치르고도 콜롬비아와 비긴 뒤 우루과이·페루에 연패를 당했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시절 4년간 홈에서 단 1패만을 허용한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흐름이다. 홈 2연패는 10년 전 홍명보 감독 체제(크로아티아·브라질) 이후 10년 만이다.
페루전에선 손흥민의 공백이 특히 크게 느껴졌다. 이강인(마요르카)이 측면에서 홀로 빛났지만 다른 공격수들의 활약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결정적인 기회를 여러 차례 살리지 못했고, 공격이 풀리지 않을 때 팀을 이끌 선수도 마땅치 않았다. 손흥민이 결장하자 클린스만호 첫 무득점 경기가 나온 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다행히 손흥민의 복귀가 유력해지면서 엘살바도르전 클린스만호 화력은 기대감이 더 커지게 됐다. 마침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A매치 2연전에서 손흥민에게 이른바 ‘프리롤’을 맡기며 활용법을 찾았다. 손흥민은 측면이나 전방이 아닌 2선 가운데에 포진한 뒤 자유롭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손흥민의 공격 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클린스만 감독의 구상이었다.
자유를 보장받은 손흥민도 특유의 돌파나 슈팅은 물론 날카로운 패스로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었다. 원톱보다 앞에 위치할 때도 있었고, 양 측면까지 폭넓게 움직였다. 측면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상대 진영 곳곳을 파고들었다. 손흥민의 프리롤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 수비 전술의 균열로 이어졌다. 당시 클린스만 감독은 “앞으로도 계속 프리롤을 맡길 생각”이라며 손흥민 활용법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페루전에서 고군분투했던 이강인과의 시너지 효과도 주목을 받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앞서 A매치 2경기 연속 이강인을 측면에 배치했다. 손흥민이 프리롤을 맡고, 이강인이 측면에 포진하는 형태의 공격진 배치가 가능하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두 공격진 에이스의 존재는 팬들 입장에선 그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조합이자, 상대 팀 입장에선 커다란 부담이다.
엘살바도르는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가장 약한 전력의 팀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한국은 27위, 엘살바도르는 75위로 격차가 크다. 엘살바도르는 한국에 오기 전 일본과 먼저 평가전을 치러 0-6 대패를 당했다. 경기 시작 1분도 지나지 않아 선제점을 허용하고, 3분 만에 퇴장 선수가 나오면서 와르르 무너졌다. 수비가 불안한 팀과 맞대결에 손흥민의 복귀는 그래서 더 반갑다. 클린스만호 출범 첫 승을 이끄는 에이스의 모습을 바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손흥민도 의지가 남다르다. 그는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해 “감독님이 아직 첫 승을 못 거두셨는데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부산에서 넘어오는 과정에서부터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생각한 것보다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준비하고 있다. 좋은 경기, 재미있는 경기, 승리할 수 있는 경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