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을 하더라도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과 대한축구협회(KFA)가 6월 A매치 평가전 2연전을 통해 건넨 메시지다.
인종차별 물의를 일으키고도 A매치에 출전한 건 울산 현대 소속 미드필더 박용우(30)와 정승현(29)이다. 이들은 지난 16일과 20일 열린 페루·엘살바도르와의 A매치 평가전 2연전에 모두 출전했다. 박용우는 페루전 교체 출전 이후 엘살바도르전에서 A매치 선발 데뷔전을 치렀다. 정승현은 2경기 모두 선발로 나서 수비진을 지켰다.
이들은 22일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프로축구연맹 ‘인종차별 상벌위원회’에 출석한다. 앞서 지난 11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전북 현대에서 뛰었던 태국 출신 사살락 하이프라콘을 빗대 인종차별 발언을 해 논란의 중심에 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팀 동료 이명재의 피부색과 관련해 인종차별성 댓글을 남겨 물의를 일으켰다. 박용우와 구단 매니저는 선수 실명까지 언급했다.
파장은 컸다. 국내뿐만 아니라 사살락과 소속팀 부리람 유나이티드 등 태국 축구계도 분노했다. 울산 구단은 물론 홍명보 울산 감독도 결국 고개를 숙였다. 홍 감독은 “실명이 거론된 선수와 가족들, 소속팀 팬들, 태국 축구 팬들께 죄송하다. 인종차별은 축구를 떠나 세계적인 문제다. 분명히 없어져야 되는 문제다. 감독으로서 머리 숙여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박용우 등 일부 선수들은 한국어로 사과문을 올렸다. 울산 선수 4명과 팀 매니저는 사상 초유의 인종차별 상벌위 출석 및 징계가 예고된 상태다.
문제는 이번 인종차별 논란을 클린스만 감독 등 대표팀은 물론 KFA조차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표팀에 소집된 박용우와 정승현 모두 A매치 2연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종차별로 징계를 앞둔 선수가 국가를 대표해 경기에 출전한 촌극을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인종차별 논란이 발생한 건 6월 A매치 소집 훈련 전날이었다. 실력 등을 떠나 물의를 일으킨 선수들을 소집에서 해제하고 대체 선수를 발탁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했다. 소집 해제가 어렵다면 엔트리 제외 등을 통한 명확한 메시지 전달이라도 필요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1993년·1994년생인 선수들을 향해 “누구나 실수는 하고, 어린 선수들이라면 더 그렇다”고 감쌌다. KFA 역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했다. 인종차별을 가한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전 경기에 출전한 기록만 남겼다. 태극마크 권위도 그만큼 떨어졌다.
축구계 관계자는 “인종차별이 세계적으로도 민감한 문제인 만큼 징계가 확정되기 전까진 출전을 안 시키는 게 모두에게 더 나았을 것이다. 한국은 인종차별을 해도 대표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 됐다. 대표팀은 특히 선수들의 도덕적인 기준이 엄격해야 한다. 이미 출전까지 시켰는데 KFA 차원의 징계가 나오기도 애매하게 됐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