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에 이어 GM, 리비아까지 테슬라와 '충전 동맹'을 맺으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대 경쟁 업체인 테슬라가 주도하는 충전 동맹에 따르기도, 나홀로 기존의 충전 방식을 고집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충전 인프라까지 미국 전기차 기업에 종속되진 않을지 우려하는 눈치다.
2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 업체 리비안은 테슬라의 충전네트워크인 '슈퍼차저'를 사용하기로 했다.
포드, GM에 이어 리비안까지 테슬라의 슈퍼차저를 채택하면서 북미 지역에서 테슬라의 충전 방식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포드는 지난달 25일, GM은 지난 8일 각각 테슬라 슈퍼차저를 이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포드, GM 이외에도 완성차 업체는 테슬라 충전 표준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현재 전기차 급속충전 규격은 미국·유럽·우리나라가 사용하는 합동충전시스템(CCS)과 일본의 차데모, 중국의 GB/T, 테슬라 충전 규격인 북미충전표준(NACS)이 있다. 최근까지 미국·유럽 업체들이 사용하는 CCS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는 분위기였다.
이번 '충전 동맹'으로 미국 시장에서는 테슬라의 NACS가 가장 앞서 나가게 됐다. 자동차정보업체 콕스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테슬라가 62.4%로 1위, GM이 7.6%로 2위다. 포드는 4.2%로 3위, 리비안은 3.1%로 5위를 기록 중이다. 시장 점유율로만 보면 미국 전기차 시장 4분의 3 가까이 테슬라의 충전 규격을 사용하게 되는 셈이다.
기존에는 NACS를 지원하는 별도의 어댑터가 없으면 GM·포드·현대차 사용자는 슈퍼차저를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미국 정부가 ‘국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특별법’에 따른 전기차 충전소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테슬라에 타사도 테슬라 충전 규격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에 테슬라가 관련 기술을 공개했고 포드와 GM, 리비안이 테슬라 규격을 쓰겠다고 한 것이다. 스텔란티스는 테슬라 충전 표준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도요타·혼다 등도 다양한 충전 옵션을 모색 중이라고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일단 테슬라의 충전기 연결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투자자, 애널리스트, 신용평가사 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개최한 '2023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NACS 테슬라 충전 퓨즈는 사실 큰 화두가 되고 있다"며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고객 관점에서 판단을 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충전 시간이 길어진다는 점이 현대차가 선뜻 슈퍼차저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다. 현대차는 800볼트 초고속 충전으로 설계돼 있고 테슬라는 500V로 설계돼 현대차의 전기차를 테슬라 슈퍼차저에 연결하면 오히려 충전 속도가 늦어져 충전 시간이 더 길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향후 EV전략에서 테슬라가 만든 충전 생태계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깔려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테슬라의 충전 인프라에 참여하면 당장 많은 충전소를 쓸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데이터와 부가서비스 등이 테슬라에 종속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업계는 현대차도 충전 경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충전방식 표준규격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관련 기술과 인프라, 기업들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CCS 방식을 제공하는 폭스바겐, BMW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움직임도 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북미 시장에서의 충전방식에 대한 NACS와 CCS 간 표준화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이는 향후 미 정부의 충전기 설치에 대한 보조금 확보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며 “CCS 방식을 제공하는 현대차, 스텔란티스, 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업체의 동향이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