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진(24·키움 히어로즈)은 지난 22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시즌 5승(4패)을 기록했다. 올 시즌 첫 8이닝 투구였다.
모든 면에서 최고의 투구는 아니었다. 안타는 8개를 맞았고 삼진은 3개뿐이었다. '닥터K' 안우진답지 않았다. 안우진은 "삼성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승부했다. 운 좋게 8이닝을 던지며 실점 없이 마쳤지만, 상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타격하면 경기를 풀어가기가 어렵다. 내게 운이 따르지 않아 빗맞은 안타가 많이 나올 경우에는 막기 힘들어진다"고 했다.
힘들 수 있는 상대에게 완벽한 성적을 거둔 건 포수 이지영(37·키움)의 도움이 크게 작용했다. 안우진은 "선배님과 경기 중간중간 (상대 의도를) 파악하면서 던진다. 낮은 슬라이더에 안 속으면 높은 직구를 더 활용하고, 직구 타이밍으로 공략해 오면 변화구를 더 섞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포수 리드 무용론은 전문가와 팬들 사이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주제다. 어떤 이들은 어차피 사인은 벤치에서도 낼 수 있고, 포수가 리드하는 대로 투수가 정확히 제구하기도 힘들어 리드 실력의 차이가 실제로는 실점 억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야전 사령관' 포수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좋은 투수는 그 리드(lead)를 읽을(read) 줄 안다. 안우진은 "경기 전 코치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전력 분석 내용도 숙지한다. 하지만 이런 준비는 상대가 어떤 식으로 대비하고 나올지 모르고 한 것이다. 경기 중 상대 의도를 파악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삼성전에서는 상대가 적극적으로 타격하는 만큼 초구부터 어렵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위로 이길 자신도 있어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던졌다. 지영 선배님도 '2스트라이크 이후 네 공을 공략하긴 쉽지 않다. 타자들이 2구 안에 승부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초구와 2구를 위닝샷이라고 생각하고 던졌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안우진의 친구이자 올 시즌 역시 에이스로 성장 중인 곽빈(24·두산 베어스)의 옆에도 뛰어난 포수들이 함께했다. 신인 시절 양의지(36·두산)와 배터리를 이뤘던 곽빈은 재활 치료를 마친 후 박세혁(33·NC 다이노스)과 합을 맞췄고, 올해 양의지와 재회했다. 박세혁과 단짝이었던 그는 양의지의 리드에도 "의지 선배가 사인을 내시면 그대로 던진다. 내가 그 공을 던지기 싫어도 선배의 사인에 따른다"며 '절대 신뢰'를 보낸다.
23일 키움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시즌 6승을 기록한 곽빈은 "내가 잘 던졌다기보다 의지 선배께서 잘해주셨다"며 "의지 선배의 리드를 보며 '여기서 이 공을 던진다고?'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 리드를 믿고 던지니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양의지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요구를 하는지 곽빈은 공부하고 되씹고 있다. 그는 "내가 은퇴할 때까지 의지 선배만 믿고 던질 순 없다. 하나씩 느끼면서 내가 (포수를) 이끌어야 할 때는 이끌 수 있도록 배우고 있다"고 했다.
포수의 판단이 옳아도 안타를 맞을 수 있는 게 야구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대신 머리를 비울 때 더 잘 던지는 투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전략이 없는 선수보다 잘 갖춘 선수가 더 성장하고, 더 오래 활약하는 법이다.
안우진과 곽빈도 그렇다. 신인 시절만 해도 이들은 공 빠른 유망주에 그쳤다. 그러나 그 시절과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구속, 구종, 제구 등 여러 가지가 달라졌지만, 좋은 공을 던진다는 것만으로는 에이스가 될 수 없다. 좋은 포수를 만나 성장한 끝에 확실한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