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정부가 향토 음식 개발에 적극적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보였기 때문이지요. 제 직업과 관련이 있는 사업임에도 제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그들과 제 생각은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이야 물회를 내는 식당이 도시에도 많이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해안 도시에서도 물회 내는 식당은 드물었습니다. 물회는 뱃사람들이 급하게 대충 먹는 끼니라는 인식이 있었고, 바닷가 사람들도 물회는 식당에서 팔만한 음식이 아니라고 여겼지요.
강원도 동해안의 작은 도시였습니다. 향토 음식을 개발하려는 뜻이 있다고 해서 관련 공무원과 만났습니다. 그때에는 물회가 어느 특정 지역의 음식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지명+음식명, 다시 말해서 포항물회, 제주물회, 속초물회 등의 명칭이 없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물회를 제안했지요. 그때에 저와 지역 공무원이 나눈 대화는 대략 이러했습니다.
“‘생선회를 물에 말다니요.’ 물회에 대해 설명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습니다. 물회는 바닷가 사람들이 아니면 확실히 별난 음식입니다. 그래서 관광 음식으로 뜰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행 중인 사람들은 맛있는 것보다 특별난 것에 더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물회는 아직 어느 지역도 자기 지역 음식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먼저 ‘**물회’라고 이름을 붙여서.”
“저, 죄송한데요, 물회는 이 동네 사람들도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음식 맛있기로 유명한 도시에 가면 오래된 한정식집이 있잖아요. 저희 지역에는 마땅한 한정식집이 없어요. 멀리서 손님이 오면 모시고 갈 수 있는 식당이 필요해요. ‘**한정식’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내면 어떨까 하는데.”
“한정식이 유명한 지역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여기서 한정식을 해봤자 관광객은 관심을 크게 안 둘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 동네에서 하라고 하고, 여긴 여기만의 음식이. 그리고 물회는 작은 식당들도 할 수 있어서.”
“멀리서 손님이 왔는데 겨우 물회나 먹고 가라는 게.”
“물회로 먹을 수 있는 생선은 가자미, 광어, 우럭, 쥐치, 도미, 숭어 등등 다양합니다. 생선뿐만이 아니라 해삼, 멍게, 오징어, 전복, 성게소 등 어떤 해산물이든지 물회로 먹을 수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물회를 낼 수도 있고.”
“아이고, 저희는 그냥 그럴듯한 한정식집 하나 차려서.”
제가 한정식집 메뉴를 짜드리는 일은 할 수가 없으니 더 이상의 미팅은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몇 년 후에 경북 포항에서 ‘포항물회’라는 이름으로 지리적 표시 등록을 하고 싶다고 나섰지요. 지리적 표시 출원 과정에서 포항물회의 특징을 정리하는 일을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포항에서 공무원과 여러 물회 식당을 돌게 되었지요.
“포항은 이미 과메기로 충분히 재미를 보았는데 이제 물회까지 가져가실려구요? 물회는 다른 도시가 가져가게 그냥 두시지, 하하. 하기야, 향토 음식이란 게 임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포항시민 입장에서는 포항 이름이 붙은 향토 음식을 또 하나 가지게 되었으니 포항 공무원으로서 잘하시는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과메기도 30년 전만 해도 타 지역 사람들한테는 못 먹을 음식이었지요. 어떻게 꾸덕하게 말린 꽁치를 날로 먹냐고 진저리를 쳤지요. 과메기가 뜨는 것 보고 물회도 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객관적으로 맛있는 음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인간의 음식 기호도 사회적 결과물입니다. 외식 시장에서 수많은 음식이 뜨고 지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음식들이 객관적으로 맛있다가 객관적으로 맛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음식이 바뀐 게 아니라 그 음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 어떤 음식이든, 시장에서 성공하게 만들려면 음식만 들여다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음식을 먹는 인간에 대한 관찰이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