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작가가 ‘악귀’로 한국형 오컬트 장르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 전작인 드라마 ‘시그널’, ‘킹덤’ 시리즈 등에 녹인 요소들을 ‘악귀’에 알차게 담아내는 동시에 서사와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내면서 독특한 세계관을 또 한번 구축했다.
◆’시그널’의 미스터리 스릴러 X ‘킹덤’의 한국형 오컬트
SBS 토일드라마 ‘악귀’는 일정 부분 김 작가의 전작들과 닮아 있다. 앞서 김 작가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시그널’이 시공간을 초월해 범인을 찾아 나서는 전개인 것처럼, ‘악귀’도 주인공인 산영(김태리)과 민속학 교수 해상(오정세)이 악귀의 존재를 쫓는 설정이다. 미스터리를 쫓아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흥미로움을 자아내는 동시에 익숙함을 안긴다.
덧붙여 ‘악귀’에선 사극과 좀비를 엮어낸 ‘킹덤’의 한국적 색채가 가득한 스릴도 버무러져 있다. 더 나아가 두 작품 모두 한국형 오컬트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 모두 우리나라의 정서를 배경으로 악귀와 좀비가 정체불명한 대상에서 발생한다는 설정으로 공포감을 자아낸다. 김 작가는 ‘전설의 고향’ 영향으로 한국형 오컬트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킹덤’과 ‘악귀’의 기획과 대본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고 밝혔다.
‘악귀’는 악귀라는 소재 뿐 아니라 전개 과정에서 민속학을 본격적으로 담아내 ‘킹덤’보다 더 독특한 드라마로 탄생했다. 드라마 초반 산영이 악귀에 씌이는 매개체인 붉은 댕기부터 옥비녀, 흑고무줄, 옹기 조각, 초자병, 금줄 등 작품 곳곳엔 민속학적 소재가 넘쳐난다. 이들을 단서로 사건의 실마리가 풀어지는 만큼 각 소재들의 의미가 서사와 버무려지면서 그 자체로 주요한 이야깃거리가 됐다.
‘악귀’는 단순히 민속학이라는 소재 뿐 아니라 극중 해상이 연기하는 민속학자가 악귀를 쫓아가는 과정에도 현실감을 불어 넣었다. 드라마의 자문을 맡은 이진교 국립안동대학교 문화유산학과(민속학과) 교수는 “민속학자가 그 지역의 주민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은 학자마다 다르겠지만, 주민을 대상으로 (드라마와)비슷한 연구 방법을 따른다”며 “김 작가가 해상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민속학자들의 여러 특성을 알아봤다”고 설명했다.
◆’악귀’, 더 강해진 메시지와 다층화된 캐릭터
‘악귀’는 김 작가의 전작들과 비교해 캐릭터들의 선과 악이 흐릿하고 사회적 메시지가 강하다. ‘시그널’에서 범죄사건 피해자, ‘킹덤’에서 민초 등에 주목했다면 ‘악귀’에서는 아동학대, 보이스피싱, 불법대부업 등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동시에 구조적 허점을 건드린다. 이를 통해 악귀를 이들 문제의 또 다른 피해자로 묘사하면서 선과 악의 이분적 구조를 허문다. 악귀가 애꿎은 사람을 해치기도 하지만, 오히려 나쁜 사람을 응징도 하는 복잡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김 작가가 방영 전부터 ‘악귀’는 ‘청년의 이야기’라고 명명한 것처럼, 산영을 대표로 내세워 사회구조적 피해에 취약체인 청년의 문제를 조명한다. 하지만 그 청년도 단순하지 않다. 소중한 걸 주면 소원을 이뤄주지만, 그렇다고 선뜻 악귀와 손을 잡을 수 없는 마음이 산영에게 복잡하게 엉켜 있기 때문이다.
‘악귀’는 한 캐릭터에도 얽히고설킨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다른 캐릭터과의 관계도 더 복잡해져 장르적 쾌감은 줄어든 면이 없지 않다. ‘악귀’가 높은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10%에서 오르내리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악귀’는 분명 김 작가의 더 넓어진 세계관을 증명하는 작품인 건 분명하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전작들의 주요 요소들이 ‘악귀’에도 담겨있으나 자신이 잘하던 장르적 재미보다 기존의 작법을 뛰어넘는 서사를 보여줬다”며 “전작들보다 더 돈과 권력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이 얼마나 약자들을 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사회 전체적으로 피해를 주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로서 뚜렷하게 성장한 대목”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