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은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가 쓴 소설이다. 그렇다. 소설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 가와바타 야스나리 말이다.
명인은 마지막 세습 혼인보인 슈사이 명인의 은퇴 대국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바둑을 두는 한국인이라면 ‘혼인보’ 대신 한자 그대로 읽은 ‘본인방’이라고 하면 익숙할 터이다.
뱁새 김용준 프로가 명인을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간다. 바둑도 둘 줄 아느냐고? 뱁새 김 프로는 골프를 알기 훨씬 전에 바둑에 푹 빠져 살았다. 대학시설 아마추어 바둑 고수 몇 명과 가까이 지낸 덕분이었다. 아마 5단 정도였던 고수에게 아홉 점이나 깔고 배우기 시작했다.
고수끼리 대국이 벌어지면 뱁새는 관전을 하며 심부름도 하곤 했다. 용호상박인 승부가 끝나는 새벽 무렵이면 지도대국을 한 판씩 두어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 지도대국을 받으려고 맥주도 사 나르고 연탄불에 쥐포도 구워 올렸던 것이다.
바둑 전문 채널도 없고 인터넷 바둑도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다. 대국 후 고수가 해 주는 복기는 하수인 뱁새에게는 더없이 값진 것이었다. 복기란 승부를 끝낸 바둑을 되짚어 보는 것을 말한다. 고수가 빌려주는 바둑교본과 복기를 거름으로 삼아 뱁새는 까는 돌을 하나씩 줄여갔다. 그리곤 마침내 상수 가슴팍쯤까지 갈 수 있었다.
30여년 동안이나 세습 혼인보 자리를 지킨 슈사이 명인은 흑을 잡은 적이 없었다.
그 긴 세월을 백을 잡고 누구에게든 이겨야 했다. 덤도 받지 않은 채로. 그 시절 바둑 가문은 연구한 수를 공개하지 않고 비밀로 했다. 큰 승부에서 써먹기 위해서였다. 바둑은 먼저 두는 흑이 조금 유리하다. 그래서 나중에 두는 백에게 몇 집을 덤으로 준다. 덤은 현대 바둑에서 나온 제도이다. 슈사이 명인 시절에는 그런 덤이 없었던 것이다. 덤만큼 불리한 승부에서 숱한 도전을 물리치고 혼인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는 얼마나 많은 수련을 했을까?
그런 슈사이 명인이 고령으로 은퇴를 하게 됐다. 그것을 기념한 은퇴기였다. 그 대국에는 덤뿐 아니라 시간 제한도 없었다. 한 수 한 수 두기까지 두 고수는 번갈아 많은 시간을 썼다. 하루에 한 두 수만 두고 끝나는 날도 있었다. 대국이 중간에 몇 달씩 중단되기도 했다. 슈사이 명인의 건강이 나빠서이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니 TV로는 중계할 길이 없었다. 대국은 참관인이 기보(대국의 수순을 기록한 것)로 남겼다. 수 년 만에야 끝난 승부에서 명인은 패했다.
느닷없는 바둑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슈사이 명인 은퇴기가 벌어질 때쯤 일본기원은 제한시간을 도입했다.
그 시절에는 신문 기전이 많았다. 신문사가 주최하며 매일 신문에 기보를 실었다. 뱁새 기억으로 신문기전의 제한시간은 흑과 백 각각 여덟 시간씩이었다. 흑백이 시간을 모두 쓴다면 무려 열 여섯 시간이나 되었다.
물론 초읽기에 몰리며 버티는 시간은 빼고. 대마가 죽지 않는 한 하루에 바둑이 끝나는 일은 드물었다. 거의 다 이틀짜리 승부였다.
그러다가 TV가 중계하는 TV 기전이 생기기 시작했다. TV로 이틀짜리 승부를 생중계하는 것이 무리였다. 언제 착점(한 수를 놓는 것)을 할 지도 모르는 채 시청자를 한 없이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제한시간을 줄였다. 여덟 시간이던 것을 네 시간으로. 그래도 하루에 승부가 나지 않는 경우가 생겼다. 제한시간을 다 쓰면 초읽기를 한다. 60초 안에 무조건 둬야만 하는 식으로 말이다. 초읽기가 끝났는데도 착수를 하지 않으면? 형세에 관계없이 반칙패이다. 절정 고수라면 마지막 초읽기로도 한 두 시간을 거뜬히 버텨냈다. 패 싸움(상대가 따 낸 자리를 다시 따내는 것)이라도 벌어질라치면? 승부는 한 없이 길어졌다.
그러다가 인터넷으로 바둑을 중계하는 시대가 열렸다. 누가 인터넷으로 하루 종일 바둑 중계만 보고 있겠는가? 바둑계는 한중일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제한시간을 더 줄였다. 큰 기전은 두 시간으로 작은 기전은 한 시간으로 말이다. 30분짜리 속기바둑(빨리 두는 바둑)도 나왔다.
이렇게 제한시간을 줄이면서 바둑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SNS) 시대에 각광받는 스포츠로 성장했다. 제한시간이 줄어들자 속기에 능한 프로 기사가 별안간 촉망 받기도 했다. ‘손오공’이란 별명을 가진 서능욱 9단이 좋은 예이다. 손바람을 내다가 덜컥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아 큰 승부에서 번번이 우승을 놓치던 그였다. 오죽하면 자신을 다스리느라 염주를 손에 들고 대국을 하기도 했을까? 그런 그가 제한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이자 두각을 나타냈다. 전 세계가 주목한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 승부도 제한시간은 단 두 시간씩이었다.
스포츠 특히 ‘관람하는 스포츠’는 신속한 플레이가 생명이다. 관람은 현장에 가서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관람하는 팬이 훨씬 많다. TV 시청자나 소셜 미디어 구독자가 느린 플레이를 외면하는 것은 말하나 마나이다. 시청자와 구독자가 안 보는 스포츠를 누가 후원하겠는가? 바둑뿐 아니라 여러 스포츠가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미 오랜 전부터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이 때문이다.
골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세계 골프 규칙을 관장하는 두 단체는 지난 2019년에 규칙을 현대화 하면서 플레이 속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규칙을 관장하는 두 단체가 어디인지를 모른다면? 뱁새 칼럼 애독자가 절대 아니다. 몇 번이나 이야기 했으니 지난 칼럼을 꼭 찾아보기 바란다.
페이스 오브 플레이(Pace of Play, 신속한 경기 진행이라는 뜻)는 현대 골프가 지고 있는 숙명이다. 느리게 플레이 하는 프로 골퍼는 골프 세상이 커지는 것을 막는 장해물이다. 응원하거나 후원할 이유가 없다.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메일을 보내기 바란다. 지메일 ‘ironsmithki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