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당신이 속한 조직의 리더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당신에 대해 이렇게 말하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요즘 표현으로 '저격'당한 느낌 아닐까요.
"내가 무슨 병이야?"라고 억울하겠죠. 졸지에 '환자'로 낙인 찍혀 화가 날 수도 있을 겁니다. 또는 "지난번 면담에서 (리더를) 믿고 말했는데 그걸 말한다고?"라며 비밀을 들켜 창피하고, 서운할 법 합니다. 아니라고 말도 못한 채 마음의 상처가 남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공개적으로 특정 선수에게 '병'이 있다고 말한 김원형(SSG 랜더스) 감독 인터뷰를 봤습니다. 7월 초 인천 문학구장. 경기 전 미디어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투수 박종훈 선수의 부진과 관련, 이렇게 말합니다.
"팀 입장에선 종훈이는 살아나야 할 선수다. 계속 인내하며 기회를 줬는데, 냉정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모습이 박종훈이다. 심리적 요인이 투구에도 영향을 줬다곤 해도 언제까지 마음의 병을 달고 있을 것인가. 이제 연차도 적지 않은 선수다." 감독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박 선수 역할이 중요해 부진해도 나는 계속 믿었다, 한계가 왔다, 선수의 압박감을 이해하지만 베테랑이면 그걸 넘어서야 한다.' 팀 전체를 생각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서 발언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라고 표현한 것은 지나쳤습니다. 제가 스포츠 감독의 공개된 인터뷰 내용을 놓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리더의 말이 갖는 중요성, 상징성 때문입니다.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 신뢰에 큰 영향을 줍니다. 일반 조직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리더의 공개 인터뷰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둘만의 대화가 아니기에 더 조심하고 가려야 합니다. 섬세함과 배려로 연결됩니다. 일종의 사회적인 룰처럼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세 가지 이슈로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공감입니다. 누군가를 약자로 규정하는 단어는 조심스럽게 써야 합니다. 이번 경우 선수는 마음의 병이 있는, 아픈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야구 선수의 멘탈 문제를 왜 병으로 봅니까? 그가 단지 나약해서, 문제가 있어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도 '마음의 감기'라고 말하는 요즘 시대입니다. 심리적 원인 진단 외에 주변 환경, 호르몬 등 다양한 이슈가 복합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작동합니다.
둘째, 부정적 피드백입니다. 지난 경기의 부진을 마음의 병이 원인이라고 리더가 진단하는 순간 선수는 그 틀에 갇힙니다. 안 그래도 마음의 부담이 큰데 말입니다. 단정적인 말이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고, 상처를 안길 수 있다는 점을 살피면 좋겠습니다.
셋째, 마음을 다루는 일도 전문 분야입니다. 감독이 답을 주고 싶겠지만 전지전능할 수 없습니다. 과거처럼 감독과 선수의 인간관계, 기술 코치의 현장 경험 만으로 후배 선수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루기 어렵습니다. 감독과 선수, 리더와 구성원은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사이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파악하기로는 랜더스의 멘탈 코치 포지션이 올해는 공석이라고 합니다.
박종훈 선수는 2021년 중반 오른손 팔꿈치 수술을 받고 지난해 여름 복귀했습니다. 돌아온 지 1년 됐으나 사람에 따라 완전히 회복하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합니다. 정연창 팀42 트레이닝센터 대표코치는 "인대접합 수술이 보편화됐지만 그냥 쉽게 복귀하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수술 부위가 굳어지기에 충분한 시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가만 보면 재활 과정은 마음의 이슈가 50% 넘는 것 같다. '복귀하기 무섭다'고 말하는 베테랑이 많다. 기술 훈련 이전에 마음을 풀어주고 용기를 줘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김 감독님과 박 선수에게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스웨덴 출신의 작가,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세상에 주는 조언이자, 그의 책 제목입니다. 글로벌 기업 최연소 임원에서 태국의 승려로 출가해 17년을 지낸 그는 환속 후 루게릭병 판정을 받고 지난해 세상을 뜹니다. 이 말은 감독님에겐 단언하고 싶은 순간을 벗어날 지혜를 드릴 겁니다. 선수에겐 혹시 그동안 생각과 방법이 고집일 수 있는지, 다르게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줄지 모릅니다.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 김종문
김종문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2011~2021년 NC 다이노스 야구단 프런트로 활동했다. 2018년 말 '꼴찌'팀 단장을 맡아 2년 뒤 창단 첫 우승팀으로 이끌었다. 현재 한국코치협회 인증코치(KPC)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