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 설정에, 뒷얘기가 예측 가능할 정로도 뻔하지만 본방사수는 멈출 수 없다. ‘킹더랜드’의 묘한 매력이다.
JTBC와 넷플릭스를 통해 동시 공개되는 토일드라마 ‘킹더랜드’를 향한 관심이 종영까지 단 2회 남은 상황에서 아직도 뜨겁다. 첫 회 5.1% 시청률(이하 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시작해 최고 시청률 12.3%(12회)까지 찍으며 승승장구 중이다. 화제성 또한 뜨겁다. 펀덱스가 발표한 TV-OTT 통합 화제성 순위(7월31일 기준)에서 6주 연속 최상위권에 안착했다. 앞서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웹사이트에서도 TV(비영어) 부문 1위를 3차례 기록하면서 해외 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실감케 했다.
국가를 막론하고 ‘킹더랜드’ 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사실 ‘킹더랜드’는 극 초반부터 스토리 전개에 있어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재벌 2세에 잘생긴 외모까지 다 가진 남자 구원(이준호)과 2년제 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로 온갖 핍박을 받는 ‘캔디형’ 여직원 천사랑(임윤아)의 러브스토리. 그런데 완벽한 줄 알았던 남자 주인공은 이복남매 간의 갈등, 경영권 분쟁 등의 남모를 상처를 갖고 있고, 이 유일한 결핍을 채워 주는 존재가 바로 여자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의 차이로 모진 시련을 겪는다. 2023년 작품임에도 ‘파리의 연인’, ‘마이걸’, ‘꽃보다 남자’, ‘황태자의 첫사랑’같은 2000년대 유행 드라마가 주마등처럼 스치는 이유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지만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킹더랜드’를 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시청자들이 공기를 한껏 뺀 가벼운 느낌의 작품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OTT플랫폼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방송가에는 한 번 보면 절대 눈을 멈출 수 없는 ‘장르물’ 열풍이 불었다. 어렵고, 치밀하고, 섬세할수록 제대로 입소문을 탔다. 그런데 모든 방송가에서 장르물만 쏟아지다보니 대중은 점점 피로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 시간에 소소한 웃음을 안기는 게 드라마의 묘미였으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에 대한 갈증이 생긴 것이다.
‘킹더랜드’는 이같은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에 제격인 드라마다. 인물의 성격이 뚜렷하고 스토리가 단순해 아무 생각없이 즐기기 쉽다. 예측 가능한 ‘아는 맛’이 유독 반가운 이유다. 설렘 포인트도 명확하다. 구원은 언제나 위기에 빠진 천사랑을 위해 돈과 지위를 이용해 어려움을 해결하는 슈퍼맨으로 등장한다. 로맨스의 진전도 막힘이 없고, 스킨십 빈도도 많아 장면마다 심장 박동을 키운다. 올해 상반기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JTBC ‘닥터 차정숙’과 tvN ‘일타 스캔들’도 진입장벽이 낮은 일상적 소재를 메인 스토리로 삼으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무엇보다 ‘킹더랜드’는 서비스직 종사자인 천사랑과 그 주변 인물의 상황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샀다. 실제 서비스 업종에서 17년 동안 근무했다고 알려진 ‘킹더랜드’ 최롬 작가는 “각 직업군에 대한 취재와 자문을 받아 에피소드를 완성했다”며 “직장 내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존중받길 원하는 마음에서 만들게 된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학벌로 인한 사내 차별을 제대로 당하고 있는 호텔리어 천사랑은 ‘정규직’만 바라보며 씩씩하게 근무를 이어간다. 천사랑의 친구 오평화(고원희)는 기내 판매 실적 꼴찌에 사무장 승진에 매번 실패하는 안타까운 인물로 그려진다. 강다을(김가은)은 신입부터 차근차근 길을 닦아오며 마침내 팀장 자리까지 오른 인물. 그럼에도 매일 진상 고객을 상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서로의 고단함을 아는 이들이기에 의리는 깊다. 단순히 부자 남자를 만나 인생이 180도 바뀌는 신데렐라 스토리와 ‘킹더랜드’만의 차별점이라 볼 수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킹더랜드’의 전개 과정이 ‘뻔하다’고 느껴지면서도 시청자의 호응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인물 설정의 특이함 때문”이라며 “천사랑은 감정 노동자로 등장하고, 그런 틀 안에서 구원이라는 새로운 왕자님이 탄생했다. 천사랑과 구원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 그리고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구원의 태도로 시청자들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