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만 봤을 땐 외국인 투수와 불펜 포수의 평범한 대화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영어로 말하는 이가 불펜 포수고, 한국어로 얘기하는 게 외국인 선수라면 믿어지는가. KT 위즈의 외국인 투수 웨스 벤자민의 전담 불펜포수인 정유찬 매니저는 “내가 영어로 말하면 벤자민은 한국말로 말한다.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 이젠 그냥 한국인이다”라며 그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벤자민은 10개 구단 외국인 선수 그 누구보다 한국어 공부에 열성인 선수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한국 땅을 밟으면서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벤자민은 이젠 웬만한 소통은 물론, 읽기도 가능해진 지경까지 이르렀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선 통역 매니저를 거치기도 전에 질문을 알아듣기도 하고, “가자”, “우승 차지하자” 등 한국어로 각오를 다지는 게 일상이 됐다.
한국어 공부뿐만이 아니다. KBO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해 한국야구에 맞게 루틴을 재정립하고, 한국 야구 문화를 따르는 것은 물론, 코치와 포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 고집도 잘 부리지 않는다. 일각에선 “너무 착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만큼 벤자민은 한국과 KBO리그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
인성도 좋다. 벤자민의 수훈 선수 인터뷰 땐 동료 선수들의 이름이 빠지질 않는다. 배터리 호흡을 맞춘 포수들이나 승리를 도와준 타자들 등 비교적 발음이 어려운 이름도 성과 이름을 모두 붙여 언급하며 감사 의사를 전한다.
지난달 25일 수원 LG 트윈스전 승리 후엔 뜻깊은 감사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자신의 훈련을 도운 불펜 포수를 언급했다. 벤자민은 “올스타 휴식기 동안 불펜 포수들과 캐치볼을 많이 했는데, 오늘 긍정적인 투구로 이어진 것 같다. 불펜 포수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했다. 벤자민의 감사 인사를 받은 정유찬 불펜 포수는 “평소에도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해주는 선순데, 인터뷰에서까지 언급해줄 줄은 몰랐다. 정말 고마웠다”라며 웃었다.
불펜 포수는 단순히 투수의 공을 받아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공을 받을 때마다 파이팅 넘치는 샤우팅으로 투수들의 기를 살려주기도 하고, 투수 훈련이 없을 땐 배팅볼 투수나 도구 관리 등 훈련 보조 요원 역할도 한다. 벤자민도 이들의 노고를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정유찬 불펜포수는 "이런 외국인 투수가 어디 있나 싶다. 기회가 된다면 벤지(벤자민의 애칭)가 한국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 더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