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쌓아온 코믹이미지와의 싸움이었죠. 그런데 ‘더 웃겨야지’가 아니라, 경건한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주연 롤에 대해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저에게 가장 큰 산은 해상이를 만나는 거였어요. 그리고 뛰어넘었습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오정세는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지난달 29일 최고시청률 11.2%(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종영한 SBS 금토드라마 ‘악귀’는 악귀에 씐 여자와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남자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 드라마다. 극중 오정세는 민속학 교수이자 악귀를 보는 염해상을 연기했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테드창을 비롯해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승재, 드라마 ‘동백꽃 필 부렵’의 노태규 등 코믹한 캐릭터에서 두각을 보이던 오정세가 무뚝뚝한 염해상을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그는 “처음 대본을 읽고 엄청 힘들겠다 생각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딱 대본을 보자마자 ‘해상이는 정말 매력도 없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래도 김은희 작가님을 믿었죠. 작가님이 써주신 대본대로 잘 따라가면 해상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드러날 거라고 확신했어요.”
드라마 ‘싸인’, ‘시그널’, ‘킹덤’ 등 다수의 히트작을 만든 김은희 작가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노잼’인 염해상 인물을 매력적으로 그려낸 것은 결국 오정세다. 염해상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를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실제 무속인을 만났다고 하니, 그가 염해상 역할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다.
“무속인 분들 특유의 신뢰 가는 말투 아시죠? (웃음) 무속인 몇 분을 만나서 많이 공부했어요. 그리고 대사에 대한 힌트를 얻었죠. 예를 들면 ‘곧 안 좋은 일이 일어날거에요’와 같은 대사를 ‘곧 누군가가 죽어요’처럼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연기했어요”
무엇보다 오정세는 함께 연기한 후배 김태리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태리는 매 순간순간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열정적이고 건강한 느낌이다. 특히 악귀에 쓰였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산영의 미묘한 차이가 소름 끼쳤다. 선한 눈빛이었다가 악한 눈빛이 되는 게 아니라, 어느새 악귀로 변해있는 느낌이었다”고 치켜세웠다.
진지한 눈빛으로 김태리와 함께 연기한 소감을 말하던 중 “김은희 작가 드라마치곤 산영(김태리)과 러브라인이 진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라는 질문이 나오자, 오정세는 “태리랑요?”라며 웃었다.
“태리에게 러브라인 틈을 줬다니. 저랑 나이차이가 크게 나는데 그렇게 보이게 해서 미안할 뿐이에요 하하. 다시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 극중에서 해상이에게 산영은 유일한 ‘친구’였을 거예요. 드라마에 나오진 않았지만, 해상이의 휴대폰 주소록 친구 목록에 산영이 포함된 장면이 있었어요. 둘은 이성의 감정보다는 응원해주는 관계죠.”
오정세는 ‘악귀’ 이후 KBS2 ‘동백꽃 필 무렵’을 집필한 임상춘 작가의 신작 ‘폭싹 속았수다’를 비롯해 10편에 달하는 차기작 공개를 앞두고 있다. 그만큼 오정세는 시청자 사이에서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명실상부 ‘믿고 보는 배우’다.
이 같은 열일 행보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오정세 곧 입대하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는데 오정세는 “지금 들어보니 참 많이 했구나 싶네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이어 “한꺼번에 출연 소식이 전해지다 보니 많아 보이는 것 같다. 재작년부터 논의 중인 작품들도 있고 기본적으로 일 년에 두 작품 정도는 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연기 열정을 드러냈다.
오정세에게 ‘악귀’는 어떤 작품으로 남았을까. 그는 “무뚝뚝하지만 정 많은 캐릭터 해상을 만나면서 한 걸음 성장할 수 있었다. 내게는 가치가 큰 작품이다. 만약에 시즌2가 나온다면, 작가님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꼭 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