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극장가 영화 중 일부가 고전하고 있는 것과 일명 ‘묻지마 칼부림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는 진실인가 괴담인가. 둘 중 어느 것이 맞다라고 확정할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곰곰히, 그리고 꼼꼼히 생각해 봐야 할 애기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모두 여성성, 여성주의, 페미니즘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칼부림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에 불만을 지닌 20대 남자들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이는 폭력 범죄이고 대체로 이들은 ‘일베’들이다. 한국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이 자신들과 같은 남자들의 전적인 희생 때문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2,30대 남성 관객들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번 여름 영화는 류승완의 ‘밀수’와 할리우드 영화 ‘바비’로 보여진다. ‘밀수’는 8일까지 378만명을 모았지만 아직 ‘배가 고픈’ 수준이다. 류승완 감독은 조심스럽게 “젊은 층 관객의 문화가 이렇게나 바뀌었구나 실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화 ‘바비’의 국내 관객은 53만명 가량. 이 정도면 그냥 망한 수준이다. ‘바비’는 미국에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글로벌 흥행 매출이 8월3일 기준으로 10억3148만 달러다. 우리 돈으로 1조3472억원이 넘는다. 한국과 어마어마한 차이이다.
‘밀수’는 케이퍼 무비 즉 도둑 영화, 강탈 영화 중에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여성영화로 분류될 만하다.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을 여성판으로 만든 셈이고 ‘오션스11’을 여성들로 바꾼 영화 ‘오션스8’과 필적할 만하다. ‘밀수’는 특히 마지막 장면으로 여성들이 승리했으며 혹은 승리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있는데 그건 극중 권상사(조인성)이 모습 때문이다. 그는 한때 상남자였고 ‘밀림의 왕(밀수업계의 전국구, 그를 만나면 죽거나 사지 어딘 가가 잘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되는 공포스런 존재)’이었으나 마지막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2,30대 남성 관객들이 특히 이 대목을 많이 불편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영화의 제작사나 배급사에서는 ‘밀수’가 여성주의 영화의 속내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를 가급적 피하거나 숨기는 쪽으로 일찍부터 방향을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스오피스 현황은 ‘딱 그만큼’, 그러니까 2,30대 남자 관객 층이 빠진 만큼의 수치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밀수’는 당초 일찌감치 6백만명을 넘어 설 것으로 내다 봤다. 그런 예측에 비하면 속도가 느린 편이다.
‘바비’은 대놓고, 또는 드러내 놓고 여성주의를 얘기하는 작품이다. 바비랜드에서 살던 바비 캐릭터(마고 로비)가 현실 세계로 오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인데 남성 근본주의자들의 모습 하나하나가 신랄한 풍자의식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는 한편으로 남성 인형 캐릭터 켄(라이언 고슬링)의 모습을 통해 여성주의가 남성성과의 공생, 남성들과의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같은 주제의식이 한국에선 오히려 강고한 여성주의자들, 그 반대로 완고한 남성주의자 관객들 모두에게서 외면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비’의 흥행 실패는 한국사회의 현 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꽤나 정확한 분석으로 보인다. 분당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을 두고 우리 사회의 원로 중 한명인 정대화 전 상지대 총장은 “우리나라가 이제 병든 사회가 됐다”고 말했다.
문제는 영화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로 전락한 여성 대 남성, 남성 대 여성의 대립적인 갈등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 가이다. 돌파할 것인가, 피해 갈 것인가. 한쪽 성비의 관객층을 포기하고 갈 것인가 아니면 모두를 껴안고 갈 것인가. 투자와 제작의 관점에서는 당분간 이 문제는 ‘무조건’ 피해갈 공산이 크다. 즉각적인 피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에 남녀간 갈등의 문제는 가능한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규칙이 하나 더 추가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세상의 모든 문제는 때론 정면돌파를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진통이 따르더라도 방법이 없을 때는 그것을 고스란히 겪어야 할 때가 있다. 견뎌내야 한다. 영화는 끊임없이 차별의 문제에 맞서 싸워 나가야 한다. 여성이 차별되거나 반대로 남성이 차별되는 문제에 대해 영화는 줄기차게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영화는 지난 백수십년간의 역사에서 올바름을 추구해 왔으며 그 전통의 역할을 잊은 적이 없다. 올바름을 추구하는 영화가 늘 재미있지는 않지만 재미만을 추구하는 영화는 대체로 늘 올바르지 않다.
당신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영화를 향해 어느 쪽으로 가라고 요구할 것인가. ‘바비’와 ‘밀수’는 훗날 재평가될 것이다. 너무 늦으면 안될 것이다. 땅을 치고 후회하는 모습처럼 안쓰럽고 한심한 모습은 없다. 그런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