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레전드의 방한은 공부에 매진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공항에서 27시간이나 노숙했지만, 미션을 완수한 학생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9일 오후, 이탈리아 축구 전설 마르코 마테라치(49)와 파비오 칸나바로(49)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2006 국제축구연맹(FIFA) 프랑스 월드컵에서 아주리군단(이탈리아 대표팀 애칭)의 우승을 이끈 레전드 수비수 둘은 선수 시절 기량만큼이나 빛나는 팬 서비스로 한국 팬들을 홀렸다.
두 선수가 공항을 떠난 후 둘의 활약을 실제로 못 봤을 것 같은 유독 앳된 무리가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충북 청주시에서 올라온 김민성, 이지훈, 박현우, 김범조 등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넷은 “유튜브에서 옛 선수들의 좋은 활약을 많이 보면서 알게 됐다”며 공항을 찾은 이유를 전했다.
이들은 호나우지뉴와 마테라치, 칸나바로의 방한 소식을 듣고 공항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충북 청주시에서 올라온 넷은 호나우지뉴가 입국한 8일 200km의 거리를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있어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지만, 선수들을 위해 잠시 펜을 내려놨다고 한다.
이지훈 학생은 “친구들과 노숙할 계획으로 왔다”며 “(공부해야 하지 않냐는 물음에) 방학이라 괜찮다. 수능은 한 번 더 볼 수 있는데, 공부보다 선수들이 더 중요했다. 이 선수들은 언제 또 볼지 모른다”며 웃었다.
호나우지뉴의 광팬을 자처한 김민성 학생은 ‘우상’ 방한 소식을 듣고 급히 브라질 대표팀 티셔츠를 구했다. 하지만 호나우지뉴의 사인은 받지 못한 그는 “나는 평소에도 호나우지뉴의 플레이 스타일을 따라 하려고 노력한다. 호나우지뉴를 가장 오래 기다렸는데 아쉽다”고 했다.
사우나에서 쪽잠을 청한 이들은 27시간을 공항에 체류했다. 피곤이 풀리지 않아 공항 바닥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고 한다. 김민성 학생은 “호나우지뉴가 그냥 갔을 땐 아쉬웠다. 사인을 못 받았으면 공항에 27시간 있던 걸 후회할 뻔했는데, 받고 나니 갑자기 기분이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
결국 넷 모두 오랜 기다림 끝에 ‘사인’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김범조 학생은 “레전드 선수한테 받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실감이 안 나고 심장이 떨린다. 유니폼을 액자로 만들어 가보로 남길 것”이라고 했다.
약 이틀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낸 이들은 “이제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청주행 버스를 타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