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좀비’ 정찬성은 오래전부터 종합격투기 UFC 전 페더급 챔피언 맥스 할로웨이와 경기를 원했다. 오히려 현 챔피언 알렉산더 볼카노프스키보다 더 싸우고 싶었던 선수가 할로웨이였다.
비로소 정찬성은 할로웨이와 맞붙게 됐다. 오는 26일 싱가포르에서 진검승부를 펼친다. 조금 더 일찍, 기량이 절정이었을 때, 기세가 더 좋았을 때 싸웠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할로웨이전은 선수 인생 황혼기로 접어든 정찬성에게 찾아온 행운의 기회다.
정찬성은 필자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경기를 준비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처음엔 내가 싸우고 싶었던 전설적인 상대와 싸우게 된다는 게 좋았다”라며 “하지만 지금은 매일매일 스트레스 받으며 이기려는 생각만 하고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결은 할로웨이의 인터뷰가 발단이 됐다. 할로웨이는 지난 4월 아놀드 앨런과 경기에서 판정승을 거둔 뒤 “왜 지금껏 정찬성과 안 싸웠는지 모르겠다. 페더급에서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온 선수로서 정찬성과 붙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에 정찬성이 “언제든지 싸우자”라고 맞불을 놓았고, 결국 경기가 성사됐다.
경기가 발표되자 격투기 전문가와 팬들은 오히려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게중심이 할로웨이 쪽으로 너무 기울어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찬성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냉정한 평가가 그렇다. 정찬성도 자신이 ‘극단적인 언더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할로웨이의 퍼포먼스는 너무 좋았죠. 반면 나는 최근 시합에서 그렇지 못했어요. 내가 못 했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보완하고,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나 자신을 테스트 해보고 싶습니다. 챔피언이 진짜 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요.”
UFC 파이터 겸 해설위원인 마이클 키에사는 최근 필자와 화상 인터뷰에서 일반적인 전망과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할로웨이가 타격가인 만큼 강력한 한 방을 가진 정찬성에게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정찬성의 머릿속에도 패배는 없다.
“공략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험을 해보니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두 달 동안 실험을 거쳤습니다. 이제 경기 당일 내가 어떻게 싸워야 할지 확실히 정해진 상태입니다. 그걸 실수 없이 잘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5라운드 25분을 다 사용하는 장기전도 전략 중 하나다. 정찬성은 체력 훈련을 어느 때보다 많이 하고 있다. “그 어떤 경기보다 힘든 25분이 될 것이라고 굳게마음 먹고 있습니다. 이게 내 가장 중요한 전략입니다”라고 강조할 정도다.
정찬성은 지난 볼카노프스키와 타이틀전에서 패한 뒤 은퇴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올해 2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UFC 서울 대회가 그의 어깨 부상으로 무산된 뒤 격투기계에선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은퇴 가능성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은퇴경기라는 것을 꼭 해야 한다면, 한국에서 하고 끝내고 싶어요. 언젠가 '정찬성이 없다면 한국에서 UFC 대회가 열리기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고마우면서도 부담이 되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도 싱가포르에서 커리어를 끝내면 한국에선 당분간 UFC 대회가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 팬들과 한국 선수들을 위해 마지막 경기는 꼭 한국에서 치르고 싶습니다.”
일부 팬들은 젊었을 때와 비교하면 정찬성의 운동능력이 떨어졌다고 아쉬워한다. 정찬성도 그 부분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20대 초반과 지금을 비교할 때 신체적으로 바뀐 부분은 있습니다. 민첩성이 조금 떨어진 것 같습니다. 예전엔 플라잉니킥 같은 기술도 즐겼는데 요즘은 그런 타이밍을 잡는 것조차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근력은 그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습니다. 운동, 신체에 대한 이해나 기술적인 부분들도 좋아진 것 같아요.”
정찬성은 최근 경기 외적으로 좋은 일이 생겼다. 경기도 동탄에 자신의 이름을 건 ‘코리안좀비 MMA 2호점’이 문을 열었다. 정찬성이 그동안 선수로서 이룬 결실과 노하우, 경험을 모두 쏟아부은 자식 같은 체육관이다. 체육관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정찬성 본인도 “유독 이 체육관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자랑했다. 사우나와 케이지, 매트,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 기능성 훈련을 위한 기구 등 좋다는 것들은 다 들여와 만들었단다. 같은 건물에 호텔이 있어 숙박도 가능하고, 좋은 음식점들도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누군가는 이런 체육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체육관을 만들고 싶어 하는 분들이 이런 시설을 직접 보며 발전시켜 나가야 한국 격투기가 발전한다고 느낍니다.”
정찬성은 여전히 도전할 기회와 능력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 할로웨이와 경기가 정상에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새로운 발판이 될 것으로 믿는다.
“난 평생 챔피언이 되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는 꿈을 계속 이어 나갈지 말지 결정할 좋은 테스트 같아요. 이번에는 모든 계획을 내가 짜고 훈련했습니다. 진다고 해도 핑계는 없습니다.”
정찬성은 팬들에게 진심이다. 팬들의 지지와 응원은 지금까지 ‘코리안 좀비’가 버틸 수 있었던 에너지이자 연료다.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제 시합에 맞춰 싱가포르 여행을 하시는 것도 좋은 선택 같습니다. 현장에서 보지 않으면 후회할 만한 경기를 하려고 합니다. 싱가포르에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