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잡아끄는 영화 ‘잠’에서 단연 눈에 띄는 얼굴이다. 배우 정유미는 ‘잠’을 통해 이제껏 자신이 여타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감정선과 연기를 보여준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정유미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초청까지 받은 기대작 ‘잠’ 개봉을 앞두고서다.
‘잠’은 행복한 신혼 생활을 하고 있는 현수(이선균)에게 어느 날 악몽과 같은 수면 중 이상행동 증세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현수와 아내 수진(정유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믿어야 할 남편이 하루 아침에 공포의 대상이 돼 버린 상황. 수진이 겪는 감정의 파고는 깊고 거셀 수밖에 없다. 정유미가 작품에서 표현해야 할 감정의 변화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이 때문인지 영화 공개 후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수식어도 나왔다. 평범한 임산부였던 수진은 이상행동을 하는 남편을 보면서도 한 번에 돌아설 수가 없다. 부부는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것이고, 잠에 들지만 않으면 현수는 믿음직스럽기 그지없는 남편이기 때문이다. 이 탓에 정유미는 두려움을 가까스로 속으로 억누르는 어려운 연기를 해야 했다.
정유미는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말을 칸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된 뒤에 처음 들었는데, 그런 말씀을 해주실 줄 알았다면 더 광기 있게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 “사실 연기를 할 때는 그런 점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감독님이 주시는 디렉션대로 연기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저는 연기를 하면서 제 얼굴을 못 보잖아요. 저는 감독님이 와서 보라고 하지 않는 이상 모니터를 잘 하는 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잠’을 보면서 놀랐던 장면들이 있긴 했어요.”
유재선 감독과 작업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고 이야기한 정유미지만, 현장에서 불만족했던 부분도 있었다. 바로 로우샷의 사용이다. ‘잠’은 과감한 확대샷, 로우샷 등이 여러 컷에서 사용된 작품. 찍는 배우 입장에서는 불안한 부분도 있었다고.
“현장에서는 ‘왜 자꾸 밑에서만 찍으시냐’고 했어요. 그렇게 찍으면 콧구멍만 나오지 않냐고요. (웃음) 완성된 영화를 보니 필요한 장면이었구나 싶어 납득이 되더라고요.”
그 외에도 유재선 감독의 결정에 만족한 순간들은 많았다. 정유미는 “우리 영화는 저예산 축에 들어가잖느냐”며 “작업이 컴팩트해야 했는데, 감독님이 간결하게 표현을 잘 해주시더라. 연기를 할 때도 더 명확하다고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잠’의 대본에 흥미를 느꼈던 정유미를 출연 결심으로까지 이끈 건 그런 유재선 감독의 간결하고 담백한 태도였다. 정유미는 “감독님이 현장에서도 쓸데없는 말을 잘 안 한다. 명확하다”고 밝혔다.
“‘잠’ 대본을 보고 간결하고 깔끔했다고 느꼈어요. 영화는 드라마에 비해 원래 대사가 많이 없긴 한데 ‘잠’은 그런 가운데서도 단연 더 퍼펙트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런 대본, 시나리오는 처음 받아 본 것 같아요. 물론 저한테 더 중요한 건 연출자 분이라 만나 뵙고 싶었고, 감독님을 뵙곤 믿음을 느꼈어요.”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진짜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 연기를 했다”던 정유미. 이런 강한 믿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잠’은 미스터리, 호러, 스릴러까지 어느 한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장르물의 영화다. 여기에 정유미의 신선한 연기는 관객들을 더욱 매료시킬 전망이다. 보고 나면 쉽게 잠들기 어려울 현실 공포를 담은 ‘잠’은 다음 달 6일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