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규(울산 현대)의 이름은 이번에도 없었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의 선택은 부상으로 소속팀 전열에서 이탈한 조규성(미트윌란) 오현규(셀틱), 소속팀에서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황의조(노팅엄 포레스트)였다. 전날 “0.1% 기대를 하고 있다”던 주민규의 씁쓸한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클린스만 감독은 28일 9월 A매치 평가전 웨일스(원정) 사우디아라비아(중립·잉글랜드)전에 나설 25명의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했다. 관심을 모았던 3명의 공격수 자리는 지난 3월과 6월에 이어 이번에도 똑같았다. 황의조와 조규성, 오현규가 클린스만 감독의 재부름을 받았다.
이들 모두 부상·경기 감각 저하 등을 이유로 대표팀 승선 가능성이 불투명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이들을 그대로 불렀다. 조규성과 오현규는 각각 허벅지와 종아리 부상으로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오현규는 프리시즌에 다친 부상 탓에 아직 새 시즌 첫 경기도 치르지 못한 몸 상태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한축구협회(KFA)를 통해 “조규성은 소속팀과 계속 소통하면서 이번 소집 합류에 무리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오현규의 몸 상태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황의조의 승선도 고개를 갸웃할 만하다. 노팅엄 포레스트 소속으로 아직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시즌엔 시험대에 올랐으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개막한 뒤에는 3경기째 단1분도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실전 경기 감각에 대한 우려가 불가피하다. 앞선 오현규와 황의조 모두 자칫 새 시즌 첫 경기를 A매치를 통해 치를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
자연스레 주민규의 국가대표팀 승선 희망도 또다시 꺾였다. 앞선 3명 가운데 단 1명이라도 이탈할 경우 가장 유력한 대체 후보는 주민규였다. 물론 최근 들어 경기 감각이 떨어진 건 사실이지만, 명단 발표 전날 FC서울 원정에서 멀티골을 터뜨리며 다시 존재감을 알린 상태였다. 더구나 주민규는 2021시즌 득점왕, 2022시즌 득점 2위(조규성과 득점 수는 동률·이상 당시 제주 유나이티드)에 오른 K리그 대표 골잡이였다. 이번 시즌도 득점 공동 선두에 올라 있다.
부상 중인 기존 공격수들을 보호하고, 공격수 풀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주민규를 시험대에 올릴 명분은 충분했다. 대표팀 명단 발표 전부터 공격수들의 연이은 부상 낙마에 대표팀에 비상이 걸렸던 것도 그동안 시험대에 올렸던 마땅한 공격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제 겨우 두 번째 대표팀 명단을 꾸리는 만큼 폭넓게 선수를 살피는 것도 필요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부상으로 몸 상태가 온전치도 않거나, 소속팀에서 출전하지 못하고 있는 유럽파들로 공격진들을 꾸렸다.
주민규의 씁쓸한 기대도 허망하게 끝이 났다. 주민규는 앞서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전 감독 체제에서도 줄곧 외면을 받았다. 벤투 감독이 이미 오랫동안 대표팀을 이끌며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이어가던 시기여서 주민규에겐 끝내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나마 벤투 감독이 물러나고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하면서 기존 경쟁체제도 ‘원점’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였다. 정작 클린스만 감독도 벤투 감독이 뽑았던 3명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전날 서울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린 뒤 취재진과 만난 주민규는 대표팀 발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깊은 한숨과 함께 “0.1% 정도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기대하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모든 선수에게 꿈인 태극마크 희망은 놓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주민규는 “(대표팀과 관련된) 일들이 정말 많았고, 상처도 받았다. 마음을 비워놓고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이번에도 안 되면 내가 부족하다는 뜻일 것이다. 여전히 부족함을 채워 나갈 것이 많다고 본다”고 애써 말했다. 부상과 0경기 출전 등 대신 발탁된 다른 공격수들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면, 주민규에겐 또 다른 상처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