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 4년 만에 여자 프로당구(LPBA) 정상에 오른 일본 사카이 아야코(하나카드)는 우승 직후 가족들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남편은 일본에서 홀로 두 아리를 돌봐주고 있고, 아이들도 유튜브를 통해서나 자신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카이는 “일본에 돌아가면 맛있는 밥을 만들어서 먹이고 싶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자,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며 웃었다.
사카이는 전날 경기도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에서 열린 에스와이 LPBA 챔피언십 결승에서 김민아(NH농협카드)에 4-2(8-11, 11-10, 4-11, 11-0, 11-8, 11-6) 역전승을 거두고 22개 투어 만에 처음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3000만원. 지난 2019년 5차전 데뷔 후 약 4년 만에 맛본 챔피언의 자리다. LPBA 역대 13번째 ‘여왕’이 됐다. 일본 국적 선수의 우승은 히다 오리에(SK렌터카) 히가시우치 나츠미(웰컴저축은행)에 이어 세 번째다.
결승답게 경기는 치열하게 펼쳐졌다. 김민아가 먼저 한 세트를 따내면, 사카이가 곧장 균형을 맞추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첫 세트는 김민아가 기선을 제압했다. 첫 4이닝 만에 8-1로 크게 앞섰다. 사카이가 8-8 동률을 이뤘지만, 김민아가 행운의 뱅크샷을 포함해 3점을 채워 1세트를 11-8로 따냈다.
사카이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2세트 9이닝 8-10으로 밀려 패색이 짙었지만, 10이닝에 동점을 만든 뒤 행운의 뒤돌리기 득점으로 극적으로 균형을 맞췄다. 이후 김민아가 3세트를 따내자, 이번엔 사카이가 4세트에서 11-0 완승을 거두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사카이가 5세트에서 치열했던 승부를 뒤집었다. 7이닝째 3-1 역전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3·2·3득점을 몰아치며 단숨에 11점을 채웠다. 8-8 동점인 상황에서 걸어치키 원뱅크샷으로 분위기를 잡은 뒤 마지막 남은 한 점을 채웠다. 이날 처음으로 리드를 잡는 순간이었다.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마지막 6세트 집중력에서도 사카이가 앞섰다. 무려 17이닝까지 가는 장기전 끝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8-6으로 앞서던 16이닝에 1득점 이후 뱅크샷으로 경기를 마쳤다.
사카이는 위기 때마다 뱅크샷으로 돌파쿠를 만들었다. 결승전에서도 김민아보다 4개 많은 9개의 뱅크샷을 성공시켰다. 뱅크샷률은(총 득점 중 뱅크샷 비율)은 32.1%로 대회 평균(28.5%)보다 높았다. 이번 대회에서만 6경기 동안 48개의 뱅크샷을 성공시켰다.
대회 내내 끈질긴 집념도 빛났다. 첫 경기 한지은(에스와이)과의 맞대결에서 23-23으로 경기를 마친 후 하이런까지 비교하는 힘겨운 승부를 펼쳤다. 이후 임정숙(크라운해태·16강), 김보미(NH농협카드·8강), 박다솜(4강), 결승까지 모두 첫 세트를 내주고 경기를 뒤집는 진기록도 남겼다.
사카이는 “우승하게 돼 너무 기쁘다. 결승전 경기를 너무 이기고 싶었는데, 응원해 주는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올 시즌 하나카드 팀에 들어와 동료들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았고, 경기장에 직접 와서 응원도 해줘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팀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이어 “우승 순간 가장 먼저 가족이 생각났다. 또 일본에서 응원해 주는 많은 분들이 생각났다. 히다 오리에(일본) 선수가 오늘 뿐만 아니라 어제도 직접 와서 응원해 줘 마음이 든든했다”며 “일본으로는 개인투어가 끝나고 돌아간 뒤, 팀리그 연습이 시작되기 전에 다시 한국에 오는 루틴이 반복되고 있다. 개인투어에서 일찍 탈락하면 바로 일본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일본에 있을 때는 남편과 함께 하는 당구장에서 연습을 한다”고 덧붙였다.
사카이는 “LPBA 투어는 유일한 여자대회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대회다. 정말 훌륭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경기 환경도 너무 좋다. 심판도 최고의 심판들로 갖춰져 있다. 선수 레벨이 점점 올라가고 있어 이기는 게 점점 힘들어지는데, 그만큼 저를 성장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본다”며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감사하다는 말 밖에 없다. 일본에 돌아가면 찐하게 포옹을 해주고 싶다. 아이들에게도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한편 시즌 개막전 우승에 이어 3개월 만에 두 번째 우승이자 통산 3회 우승에 도전한 김민아는 우승 문턱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김민아는 “4강에서 김가영 선수를 이기고 올라왔는데도 우승을 못해 아쉽다. 4세트 후반부, 5세트 초반부터 체력이 많이 부족해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개막전 우승에 이어 또 결승 무대를 밟아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대회 한 경기에 가장 높은 애버리지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웰뱅톱랭킹 64강전에서 박수향을 상대로 2.273을 기록한 스롱 피아비(캄보디아·블루원리조트)에게 주어졌다. 상금은 200만원. 남자 프로당구는 5일부터 128강전을 시작해 7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우승상금 1억원의 주인공을 가리는 결승전은 11일 오후 9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