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가운데) 감독이 1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그는 닷새 만인 지난 19일 슬그머니 미국으로 다시 떠났다. 사진=대한축구협회9월 A매치에서 데뷔승을 올린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9월 A매치에서 데뷔승을 올린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무려 45일 만에 한국땅을 밟더니, 불과 닷새 만에 다시 출국길에 올랐다. 귀국 자체가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었던 클린스만 감독은 사실상 ‘보여주기식’으로 K리그 2경기를 관전한 뒤 부랴부랴 떠났다. 한국축구를 무시하는 처사가 반복되고 있다.
20일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클린스만 감독은 이미 전날 자택이 있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 유럽 원정 A매치 평가전을 마친 뒤 지난 14일 귀국했으니 불과 닷새 만에 다시 출국길에 오른 것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미국 자택에 머무르다가 유럽으로 넘어가 ‘또’ 유럽파 선수들을 관찰한다. 이후 이달 말 귀국한 뒤 10월 A매치 2연전을 준비하는 일정이다.
자신을 둘러싼 이른바 재택·외유 논란이 끊이질 않는데도 스스로 변화할 여지를 조금도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3월 취임 기자회견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상주를 약속했지만, 이후 점점 미국·유럽 등 해외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져 논란에 휩싸였다. K리그 관전은 차두리 코치(전 기술고문) 등에게 맡긴 채 자신은 유럽축구와 관련된 외신 인터뷰에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국가대표팀 명단 발표 기자회견은 생략한 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 추첨 행사에 참석해 태만 논란까지 번졌다.
사실상 큰 의미가 없는 유럽파 관전도 반복되고 있다. 취임 당시 유럽파들을 체크하는 건 유럽 곳곳에 거주하는 다른 코치진이 맡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굳이 유럽을 돌며 선수들을 만나고 있다. 손흥민(토트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은 소속팀에서 큰 문제없이 오히려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고, 설령 조금 부진하더라도 대표팀에서 제외될 선수들이 아닌데도 굳이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유럽을 도는 일정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9월 A매치에서 데뷔승을 올린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9월 A매치에서 데뷔 승을 올린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4일 오후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일 출국길에 올라 무려 45일 만에 귀국한 것 역시도 사실 클린스만 감독의 자의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웨일스 원정과 사우디아라비아(잉글랜드)와의 유럽 A매치 평가전을 마친 직후에도 클린스만 감독은 귀국하지 않고 유럽에 머무르며 김민재의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경기를 관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의 요청에 마지못해 기존 일정을 변경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워낙 많은 비판 여론이 있던 감독이 무려 45일 만에 귀국하는 현장엔 수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를 두고 “친선경기 이후 이렇게 많은 분들이 환영해 주시는 건 새로운 경험”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유럽에 머무르려던 일정을 바꿔 돌연 귀국을 결정한 배경에 대한 질문엔 “여러분들이 오라고 해서 왔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KFA 측에서 대표팀이 해외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많은 취재진이 기다린다고 말해줬고, 선수들과 함께 귀국해 인터뷰가 가능한지 물어봤다. 기존 일정을 바꾸는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귀국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귀국을 결정한 것도 아니라, 선심이라도 쓰듯 KFA 요청에 응해 귀국길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귀국 직후 클린스만 감독은 연이틀 전주월드컵경기장과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아 K리그 경기들을 관전했다. 클린스만 감독이 K리그 현장을 찾은 것도 무려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사령탑이 K리그 경기장을 찾은 것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연이틀 K리그 관전은 그저 보여주기식에 불과했다. 주중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가 시작됐고, 오는 주말에도 역시 K리그가 진행된다. 정규리그가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이라 매 경기가 전쟁처럼 치러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클린스만 감독은 그러나 ‘보란 듯이’ 짐을 싸 다시 미국 자택으로 향했다. 싸늘한 팬심, 들끓는 분노는 지금 클린스만 감독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난 3월 부임 후 클린스만 감독이 국내에 머무른 시간은 겨우 73일이다.
지난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아 FC서울과 광주FC의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위르겐 클린스만(왼쪽) 감독. 프로축구연맹 제공지난 1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은 클린스만(가운데)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더욱 황당한 건 한국축구와 K리그를 무시하는 행동을 스스로 반복하면서도 정작 팬들과 언론을 향해서는 무조건적인 응원만 당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 귀국 인터뷰 당시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되거나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팀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면서 “대회를 준비하는 팀은 긍정적인 여론과 긍정적인 힘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안 나거나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을 때, 그때 나를 경질하든 무엇을 하든 비난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시안컵 성적을 기준으로 재평가를 받겠다는 뜻인데, 다만 앞선 발언들로 미루어보건대 아시안컵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책임보다 부정적인 여론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더 크다.
지금껏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행동엔 조금도 변화가 없다. 무려 45일 만의 귀국 이후 불과 닷새 만의 출국은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축구와 여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꼴이 됐다.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성적은 1승 3무 2패. 부임 후 데뷔 최장 경기 무승(5경기)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가진 감독의 황당 행보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한편 클린스만호는 내달 초 축구대표팀 명단을 공개한 뒤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튀지니, 1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베트남과 차례로 격돌한다. 동남아 팀을 불러들여 국내에서 A매치 평가전을 치르는 건 1991년 인도네시아전 이후 32년 만, 베트남과의 국내 평가전은 1964년 효창에서 열린 경기 이후 무려 59년 만이다. 클린스만 감독 부임 이후 한국축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