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부터 김지운, 박찬욱, 강제규까지. 송강호는 대한민국 대표 영화감독들이 먼저 찾는 배우다. 1990년대 데뷔해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30년 가까이 쌓은 신뢰 덕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송강호는 한국 영화계와 함께 성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으로 스크린을 찾는다. ‘거미집’은 1970년대에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 감독(송강호)이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작품.
오는 27일 개봉을 앞두고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송강호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송강호는 ‘거미집’에서 처음으로 영화감독 김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송강호는 “그동안 못 봤던 형식의 영화일 것이다. 보다가 좀 생소하고 파격적인 면도 있을 것”이라며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맛을 느끼는 게 귀한 시대가 온 것 같다. 이젠 극장에 안 가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작품을 손쉽게 접하지 않나. ‘거미집’이 개봉하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송강호는 김지운 감독과 연이 깊다. 김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부터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2016)에 이어 ‘거미집’에서 다섯 번째 호흡을 맞췄다. 업계 동료에서 든든한 친구가 된 두 사람이기에 ‘거미집’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김지운 감독과 함께하면 어떤 영화 여행을 떠날까 기대가 돼요.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설레는 마음도 큽니다. 특히 ‘거미집’을 촬영하면서 ‘조용한 가족’,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그때 현장에서 느꼈던 지점들을 많이 느꼈어요. 25년 전에 배우들끼리 앙상블을 맞춰가면서 열정적으로 촬영했던 그때 그 설렘과 열정, 에너지를 느꼈죠.”
‘거미집’은 지난 5월 제76회 칸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상영 중 박수는 물론 종영 후 12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거미집’을 통해 8번째로 칸을 찾은 송강호는 예전보단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화면으로 긴장해 있는 수상자들 표정이 보이더라. 나도 그 마음을 겪어봤으니 ‘긴장되겠다’ 생각하면서 지켜봤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감독의 고충을 느끼게 됐다는 송강호. 한때는 카메라 뒤에서 편히 앉아있는 직업이라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송강호는 “김열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영화를 완성하겠다는 야망을 가진 사람이다. 이게 실패로 돌아가면 야망도 실패한다”면서 “그런 절박함에 휩싸인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감독은 쉬운 직업이 아니에요. 배우들만 고생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웃음)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는 곳에서 창작해내는 것이 일개 배우가 감당할 몫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게 감독의 세계라는 걸 간접적으로 느끼게 됐어요.”
1990년 연극 배우로 시작해 칸의 남자로 불리기까지. 송강호는 ‘괴물’, ‘박쥐’, ‘기생충’을 거쳐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우뚝 섰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좀처럼 영화계가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솔직한 생각을 전했다.
“팬데믹이라는 게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어요. 다양한 콘텐츠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영화의 소중함도 얻어진다는 거죠.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특히 ‘거미집’을 찍으면서는 ‘그래, 이게 영화지’라는 생각을 늘 했어요. 관객과 극장에서 소통하고 같이 웃고 우는 그 공간과 메커니즘 자체가 그리웠어요.”
송강호가 ‘거미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영화의 발전’이다. 여기에 김지운 감독과 든든한 후배 배우들까지 함께했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송강호는 장영남, 오정세, 임수정, 전여빈, 정수정 등과 극을 풍성하게 채운다.
“이 시기에 한국 영화가 관객들에게 한 발짝이라도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흥행에 실패할지언정 이런 시도조차 없다면 틀에 박혀있는 영화만 계속 반복해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계속해서 작은 노력을 해왔어요. 한 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