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47 보스톤’으로 돌아온 배우 하정우를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작품. 하정우는 이 영화에서 전설의 마라토너인 손기정 선수 역을 맡았다.
손기정 선수 하면 바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손기정이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1위로 들어온 뒤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이다. ‘1947 보스톤’은 이 역사적인 순간으로 영화의 문을 연다.
하정우는 이 장면을 찍으면서 쉽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놨다. 조국이 아닌 일본의 국기를 달고 금메달을 받은 선수의 침통한 심경. 손에 든 묘목으로 가슴에 단 일장기를 가리는 과정이 고스란히 스크린에 구현됐다. 하정우는 “표정과 서 있는 자세, 일장기를 가리는 표현 모두 조심스러웠다”고 이야기했다.
주위에선 그런 하정우가 손기정 선수의 외모와 닮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제작사와 영화를 연출한 강제규 감독은 물론, 손기정재단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닮았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다고 했다. 하정우는 “선생님이 얼굴이 조금 긴 편이라 그렇게 보였나” 하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사진을 계속 보다 보니 나 스스로도 외적으로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고 말했다.
배우와 실존 인물의 외모가 비슷하다고 영화를 찍을 준비가 다 된 것은 아니다. 마라토너의 마음을 느껴보기 위해 하와이에서 호놀룰루 마라톤에도 참여했다. 걷는 걸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지만, 풀코스 마라톤은 또 달랐다는 게 하정우의 설명이다. 하정우의 풀코스 기록은 대략 6시간이다.
“뛰다 걷다 하면서 완주를 했는데 정말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 전에도 하프는 뛰어 봤지만 풀코스는 처음이었어요. 완주한 뒤 잔디밭에 한동안 누워 있었어요.”
그렇다고 영화에 하정우가 현역 선수로 뛰는 장면이 들어가 있던 것은 아니다. ‘1947 보스톤’의 주인공은 손기정과 서윤복 선수. 자신이 선수일 때 가슴에 일장기를 달아야만 했던 손기정 선수가 감독으로서 어딘가 자신과 닮은 서윤복 선수를 만나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영화의 주요 골자다.
하정우는 “사실 영화에서 뛰는 건 임시완이 한다”면서 “호놀룰루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엘리트 선수들이 뛰는 걸 봤는데, 우리 영화에서 임시완의 포즈가 그 선수들과 정말 비슷하더라.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고 몸을 만들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서 손기정의 마음에 대해 “‘선생님이었으면 어땠을까’, ‘어떤 심정이셨을까’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베를린올림픽에 일장기 달고 출전하고, 일장기를 가린 것 때문에 핍박을 받다가 마라톤도 그만두고 서윤복 선수를 만난 것”이라며 “솔직히 선생님의 심경을 함부로 해석하고 표현하기는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감독님께 많이 여쭤보고 감정선을 잘 표현해보고자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해 찍은 영화 ‘1947 보스톤’은 오는 27일 개봉한다. 하정우는 “명절에 잘 어울리는 영화”라며 연휴에 극장에 올 것을 부탁했다.
“감동적인 드라마예요. 마라톤이 중심이긴 하지만 단순한 스포츠 영화는 아니고요 휴먼 드라마에 더 가깝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부담없이, 고민없이 극장에 오셔서 만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