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꼼수는 안 통했다. 단체전 금메달은 한국의 몫이었다. 그런데 금메달을 따고도 대표팀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4명이 함께 출전하고도 시상대엔 단 3명만 오를 수 있었던 탓이다. 대회 전 이해할 수 없는 ‘규정 변경’의 희생양이 됐다. 대한민국 근대5종 대표팀 이야기다.
근대5종 남자 대표팀은 지난 25일(한국시간) 중국 항저우의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근대5종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합작했다. 근대5종은 단체전 종목이 따로 열리지 않고 참가한 선수들의 개인전 기록을 합산해 결정한다. 개인전 금메달을 전웅태(28·광주광역시청)가, 은메달을 이지훈(27)이 따냈고, 정진화(34·이상 한국토지주택공사)도 4위에 올랐다. 막내인 서창완(26·전남도청)도 전체 18명 가운데 8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시상대엔 서창완을 제외한 나머지 3명만 올랐다. 단체전 개인 기록을 출전한 선수 전원이 아닌, 상위 3명의 기록만 합산하기로 한 대회조직위원회의 황당한 규정 변경 때문이다. 기록 합산에서 제외된 선수는 메달 다생에서도 제외된다. 매일 지옥훈련을 함께 견뎌냈던 선수들이, 정작 단체전에선 모두가 함께 웃지 못하는 것이다. 시상대에 오른 형들 3명은 막내가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고, 막내 역시 그런 형들을 보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단체전 금메달의 영광에도 대표팀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조직위원회의 황당한 규정 변경은 앞서 개인전 금메달의 주인공 전웅태도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전웅태는 대회를 앞두고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러한 규정 변경에 대해 “많이 아쉽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른 종목이나 다른 대회는 안 그런다. 다른 종목은 명단에 이름만 올라가도 메달을 주는데, 이번 대회 근대5종만 유독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 선수들 입장에서도, 대표팀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다 ‘말이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앞서 지난 7월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도 “근대5종 단체전 경기는 4명이 출전해 각각의 기록들을 더해 순위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선 상위 3명의 선수 기록만을 합산해 순위를 가리는 방식으로 변경됐다고 한다. 더 황당한 건, 4명이 출전함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좋은 3명에게만 메달을 수여한다는 것”이라며 “4명 모두가 한 팀으로 단체전에 출전하는데, 한 명은 메달을 받을 수 없다니….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고 적었다.
당시 전웅태는 “중국 남자 근대5종 대표팀의 경우, 3명의 선수에 비해 1명이 유독 도드라지게 실력이 떨어진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런 황당한 규정 변경이 개최국의 텃세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에 나선 중국 남자 근대 5종 대표팀 선수들의 개인전 성적은 3위·5위·7위, 그리고 15위였다. 15위에 그친 루오 슈아이는 승마 종목에서 0점을 받았다. 18명 중 승마 0점은 단 4명이었는데, 그중 1명이 중국 선수였다. 금메달을 따기 위한 개최국의 텃세가 아니냐는 의심이 합리적인 이유였다.
중국은 상위 3명의 성적만 합산하는 규정 변경으로 내심 금메달을 노렸겠지만, 한국의 벽 앞에 무너졌다. 상위 4명 중 3명이 한국 선수였으니, 중국은 상위 3명의 성적을 합산하더라도 은메달에 그쳤다. 한국은 상위 3명의 성적 합계가 4477점, 중국은 4397점이었다. 만약 4명의 기록을 합산하면 한국은 무려 5901점, 중국은 5600점으로 격차가 더 컸다. 동메달을 차지한 일본은 3명만 출전했는데, 만약 1명이 더 출전해 10위권 기록인 1400점만 받았어도 중국과 일본의 순위는 뒤바뀔 수 있었다.
근대5종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전웅태가 개인전 금메달, 이지훈이 은메달을 각각 차지했고,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개인전에서도 김선우(경기도청)가 은메달을, 단체전에선 김선우·김세희(BNK저축은행)·성승민(한국체대)이 동메달을 합작했다. 다만 여자 단체전 시상대 역시 앞서 남자부와 같은 이유로 막내 장하은(한국토지주택공사)은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