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개막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대회 규모는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총 45개국 1만 2500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항저우와 주변 도시 일대에서 경기가 펼쳐진다. 선수촌, 미디어 빌리지 등 공식 숙박시설만 해도 걸어서 오가기 힘들 정도로 크다. 숙소 건물이 40층에 이르고, 빌리지 내부에는 항상 내부 셔틀이 이동하면서 관계자들을 나른다. 대한체육회가 제공한 종목별 경기장 중 가장 먼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는 선수촌과 거리만 62㎞에 달한다.
시설 규모만큼 압도적인 게 인력이다. 공항을 내리는 순간부터 엄청난 수의 자원봉사자들이 방문객을 환영한다. 길을 물으면 알려만 주는 게 아니라 직접 목적지까지 동행한다. 고위 관계자라도 나타날 때는 최소 3명이 붙는다. 친절함도 놀랍지만, 자리를 비워도 되는 걸까. 비워도 된다. 어차피 또 다른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대기 중이다.
역대급 규모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대국'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감탄은 오래가지 않는다. 어딘가 모르게 계속 느껴지는 허술함 때문이다. 가령 사람은 많아도 실상 받는 도움은 많지 않다. 자원봉사자 중 영어가 가능한 이는 많아도 절반 이하. 영어가 가능한 이가 이곳저곳 기자들의 요청에 불려 다니기 일쑤다. 숙소 등록, 식사비 결제 등 기본적인 업무를 위해 한 데스크에 3명에서 10명까지도 배치되나 해외 관계자들을 소화할 수 있는 건 한두 명뿐이다.
부족한 소통, 원칙이 보이지 않는 운영도 다소 아쉽다. 지난 23일 개회식에서는 검문에 수많은 취재진이 발이 묶였다. 음식, 물, 우산 등은 물론 당초 금지 물품에 없었던 보조 배터리가 금지 물품이 된 것. 장시간 취재를 위해 배터리를 들고 다니던 기자들 다수가 셔틀버스를 타지 못하고 묶였다. 결국 개회식행 막차였던 5시 30분까지 기자들이 묶여있자, 조직위원회 측이 "물품을 맡아주겠다"고 해 간신히 해결됐다.
'배터리 해프닝'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예고 없이 금지 물품이 됐고, 이를 사전에 통보받은 취재진이 드물었다. 숙소에 두고 오려 해도 출발지인 메인 미디어센터(MMC)에서 다녀오려면 따로 셔틀을 타고 가 다시 셔틀을 타고 와야 한다. 이동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비슷한 문제는 불과 나흘만 머물렀는데도 꾸준히 보인다. 경기장마다, 시설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셔틀을 타야만 이동이 가능한데 좀처럼 합리적으로 동선을 구성할 수 없다. 어디를 가든 외부 셔틀 터미널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출발하면 터미널이 아닌 MMC로 이동한다. 다른 경기를 보러 가려면 터미널-경기장(A)-MMC-터미널-경기장(B)로 동선을 짜게 된다. MMC와 가까운 올림픽 스포츠센터 수영장을 가려 해도 반드시 터미널을 거쳐야 한다. 걸어서 15분 거리지만, 셔틀을 타보겠다고 나섰다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버스 운영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정해져 있지 않다. 1시간 간격으로 장거리 운행을 하는 노선에서는 경기가 끝나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만약 경기가 6시 5분에 끝나도 버스를 탈 수 있는 건 7시다. 정시 운행 원칙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25일 수영 종목이 끝난 후 버스가 긴 시간 출발하지 않자 기사와 한 중국 기자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다. 기자는 출발이 지연되는 데 항의했고, 기사는 원칙대로라고 반박했다. 한국만, 일부 기자만 느끼는 불편들은 아닌 모양이다.
중국은 이번 대회 개최로 엔데믹 시대 자국의 국력을 과시하고자 한다. 실제로 쾌적한 신축 시설, MMC에 설치된 알리바바의 부스,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함을 접할 때면 감탄이 자연스레 나온다. 그런데 여전히, 예전처럼 어딘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