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도 치욕적인 대회가 아닌가 싶다. 농구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팬들께 굉장히 죄송하다."
추일승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7년 만의 '노 메달'의 수모를 겪었다. 감독 스스로도 '치욕'이라는 쉽지 않은 단어를 꺼냈다.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3일 오후 1시(한국시간) 중국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 중국과 맞대결에서 70-84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4강에 진출하지 못하며 메달 도전에 실패했다. 한국이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내지 못한 건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처음이다. 1954년 마닐라 대회 때부터 농구 종목에 쭉 참가해 온 한국이 메달을 따내지 못한 건 그때 뿐이었다. 당시 '참사'로 여론의 비판을 받았는데, 17년 만에 오명의 역사를 반복하게 됐다.
아시아 최고 강호로 꼽히는 중국과 맞대결에서 진 게 놀랄 일은 아니다. 경기가 끝난 후 추일승 감독은 공식 인터뷰를 통해 "높이 등에서 밀렸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경기 일정이 타이트해서 전체적으로 체력적 부담이 있었다. 1쿼터 이후 체력이 떨어지면서 경기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러 면에서 중국이 우리를 이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돌아봤다.
높이는 어쩔 수 없지만, 체력은 어쩔 수 있었다. 앞서 지난달 30일 열렸던 일본과 조별리그 D조 최종전만 승리했어도 동메달 이상 성과를 낙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전에서 77-83으로 패했다. 상대는 농구월드컵에 나서는 최정예도 아닌 2진이었다.
일본에 패하면서 D조 2위가 됐다. 8강 직행이 아니라 바레인과 8강 진출팀 결정전을 치러야 했다. 이겼지만, 불과 14시간 만에 최고 강호 중국을 만났다. 선수들의 컨디션이 정상일 리 없었다. 최고 컨디션으로 상대해도 어려운 중국을 상대로 경기 내내 압도당한 이유다.
불균형한 로스터도 지적받는다. 이번 대표팀 12명 중 가드만 6명에 달한다. 대회를 앞두고 오세근(서울 SK), 최준용(부산 KCC), 문성곤(수원 KT), 송교창(상무) 등이 부상으로 승선하지 못했다. 추 감독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키가 큰 빅맨 자원들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조금 구성이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다. 그런 게 선발에 제한적 요소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허훈(상무)은 "선수는 내가 뽑는 게 아니다. 감독님이 하시는 역할이다.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팀 분위기 자체는 어수선했다. 가드가 6명이 왔다"고 했다.
이유야 어쨌든 성과를 내야 하고, 책임을 지는 게 감독의 일이다. 추일승 감독이 팬들에게 사과를 전한 이유다. 추 감독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죄송하다. 개인적으로도 치욕적인 대회가 아닌가 싶다"고 강한 어조로 자책했다.
추 감독은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에서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아직 대회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며 "농구를 응원하고 사랑해주시는 팬들께 굉장히 죄송하다.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일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