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배드민턴 김가은(세계랭킹 18위)은 단식에서 한국 2인자로 불린다. 1인자는 모두가 아는 '여제' 안세영이다. 김가은보다 후배지만, 세계랭킹 1위로 올해 독보적인 활약을 펼쳐왔다.
그렇다고 한국 배드민턴이 안세영 원맨 팀인 건 아니다. 지난 1일 열렸던 여자 단체전 결승전도 그랬다. 안세영이 중국의 에이스 천위페이(세계 3위)와 에이스 매치에 나서 승리를 거둔 건 한국 대표팀의 3-0 압승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화룡점정을 찍은 건 3차전에 나선 김가은이기도 했다. 당시 김가은은 천위페이에 이어 중국 대표팀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허빙자오(세계 5위)를 상대로 게임 스코어 2-0 완승을 거뒀다. 왜 김가은이 안세영에 이어 2인자로 꼽혀왔는지 알 수 있는 경기였다.
지난 4일 여자 단식 16강전을 마치고 본지와 만난 김가은은 당시에 대해 "코트에 입장했을 때부터 잊을 수가 없다. 원래 입장할 때마다 손에 메모를 하고 들어간다. 보자마자 생각이 떠오를 수 있게 단어를 적는 편"이라며 "결승전 때는 자신감의 초성으로 ㅈㅅㄱ을 적었다. 그런데 긴장해서 그마저도 잘못 적었다. ㅈㅅㅈ이라고 썼다"고 웃었다.
김가은은 "'나만 알면 되잖아'라고 생각해 들어갔다. 그런데 허빙자오 선수도 긴장한 게 보이더라. 자국 경기고, 랭킹도 나보다 높으니 그랬던 것 같다. 그걸 보니 '긴장할 필요 없겠다, 그냥 덤벼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단식에서 질주는 아쉽게 마무리됐다. 김가은은 지난 5일 중국 항저우 빈장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식 8강전에서 천위페이에 게임 스코어 1-2(17-21 21-17 15-21)로 졌다. 비록 패했으나 경기 내용은 치열했고 대등했다. 1세트를 내줬으나 곧바로 2세트를 가져왔고, 3게임에서도 막판까지 추격을 펼쳤다.
비록 개인전 입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나 올림픽 이후 성장한 김가은을 볼 수 있는 경기였다. 김가은은 2년 전 열린 202 도쿄 올림픽을 16강에서 마무리했다. 당시 일본의 야마구치 아카네에게 패했으나 이번엔 중국의 정상급 선수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파리 올림픽까진 1년이 남았고, 1년 뒤 김가은이 더 뛰어난 선수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김가은은 "올림픽 이후 마인드부터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그때도 열심히 안 한 건 아니지만, 하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면, 지금은 더 많이 안다. 그때는 겁도 많아 해보지도 못하곤 했다. 지금은 '괜찮아, 부딪혀보자'는 도전 정신으로 한다"고 했다. 그는 "대회 경험도 쌓였고, 세영이를 보면서 '저렇게 어린 애도 겁 없이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하겠어'라고 생각하게 됐다. 성지현 코치님도 정말 도움을 많이 주신다"고 전했다.
한편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은 이날 오전 9시에 열린 8강전에서 부사난 옹밤룽판(태국·16위)을 2-0으로 꺾고 준결승에 선착했다. 안세영은 6일 허빙자오(중국)와 결승행 티켓을 두고 준결승 맞대결을 펼친다. 이번 대회는 3위 결정전이 열리지 않아 최소 동메달을 확보한 안세영은 여자 단체전 우승에 이은 대회 2관왕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