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진 부산 KCC 감독은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끝난 KBL 컵대회 여정의 의미를 이렇게 말했다. 군산은 전주에서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기기 전까지 제2연고지였기 때문이다. KCC는 지난 22년 동안 전주를 연고로 뒀지만, 전주시와 갈등 끝에 결국 새 시즌을 앞두고 부산에 새 둥지를 틀었다. 갑작스레 연고 이전을 결정하면서 전주·군산 등 팬들과 작별인사를 할 기회가 없었는데, 군산에서 열린 이번 대회를 통해 마지막 인사를 건넬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전창진 감독과 KCC 선수들 모두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 감독은 “매년 컵대회는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크게 비중을 둔 대회도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무리하게 경기를 운영해서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좋은 경기력으로 결과를 얻어야 20년 넘게 동행했던 팬들과 좋은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것이란 의미였다.
실제 KCC는 이번 대회에서 강행군을 치르면서도 주축 선수들을 대거 내세워 우승을 목표로 잡았다. 지금까지 결승에 올랐던 적이 없는데, 이번 대회엔 조별리그 포함 3연승으로 결승 무대를 밟았다. 허웅, 최준용 등 주축 선수들도 쉼 없이 달렸다.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컵대회 결승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전날 수원 KT와의 4강전에서 연장 접전을 펼친 뒤 24시간도 채 안 돼 열린 마지막 경기. 이날도 KCC는 주축 선수들이 대거 출전해 최대한 오래 코트를 누볐다. 새 시즌 개막을 일주일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라 선수단 관리도 필요했지만, 이번 대회의 남다른 의미는 선수들의 투혼과 투지로 연결됐다.
사실 1쿼터까지만 해도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른 듯 보였다. 15-35, 무려 20점 차 열세. 슛 정확도가 크게 떨어지면서 격차도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KCC는 포기하지 않았다. 2쿼터 최준용의 2연속 3점슛을 기점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뒤, 허웅과 이근휘, 알리제 드숀 존슨 등의 고른 활약이 더해졌다. 결국 KCC는 81-76으로 승리하고 컵대회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1쿼터 20점 차 열세를 극복해 낸 대역전 드라마를 팬들에게 선사했다.
우승이 확정된 직후 KCC 선수단은 미리 준비해 둔 현수막을 펼쳐 보이며 전주·군산 등 전북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현수막엔 ‘전북팬 여러분의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동안 받았던 팬들의 사랑에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떠날 수도 있었던 상황, 전창진 감독과 선수들의 바람대로 가장 좋은 모습으로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었다.
KCC 선수단만 마지막 인사를 건넨 건 아니었다. 이날 경기장엔 KCC 유니폼을 입고 있는 팬들이 유독 많았다. 현대모비스의 자유투나 공격 상황 등에선 여전히 KCC의 안방 같은 분위기가 경기 내내 이어졌다. 팽팽했던 승부가 기울기 시작한 4쿼터 막판 분위기는 극에 달했고, KCC의 우승이 확정된 순간엔 경기장이 뜨거운 환호로 가득 찼다.
경기가 끝난 뒤 KCC 선수들의 인사에 전주 KCC를 응원했던 팬들도 뜨거운 응원과 박수로 답했다. 이날 박수엔 전주·군산을 떠난 KCC에 대한 원망보다는 새 출발에 대한 응원의 의미가 더 커 보였다. 20년 넘는 동행을 끝낼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누구보다 팬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전 감독은 경기 후 “전주·군산 팬들께 마지막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떠나고, 동시에 부산 팬들께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좋은 결실을 맺어서 다행”이라며 웃어 보였다. 허웅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북에서 마지막을 우승으로 끝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전북 팬 여러분들의 열정, 사랑, 함성소리 잊지 않겠다. 사랑합니다 전북팬 여러분"이라고 적었다. KCC와 전주·군산 등 팬들 간 마지막 인사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