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22)이 한국 축구의 기대주를 넘어, 에이스의 자격을 입증했다. 상암벌에는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어느 때보다 숨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지만, 이강인의 존재감은 팬들의 환호를 끌어내기 충분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FIFA 랭킹 26위)은 지난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튀니지(29위)와의 10월 A매치 평가전에서 4-0으로 완승했다. 지난 3월 클린스만호 출범 이후 이뤄낸 첫 연승이자, 다득점 승리였다.
상암벌의 주인공은 이강인이었다. 그는 이날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 최전방 조규성의 뒤를 받치는 역할을 맡았다. 첫 45분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후반 45분은 달랐다. 전반과 달리 오른쪽으로 이동한 그는 후반 9분 만에 자신의 드리블로 얻어낸 프리킥 기회에서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골문 구석을 갈랐다. 골키퍼가 손을 뻗어봤지만, 코스가 절묘해 막을 수 없었다. 이강인의 A매치 15경기 만에 터진 데뷔 골이었다.
이강인의 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3분 뒤엔 후방에서 넘어온 공을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와의 경합 끝에 지켰다. 등을 진 그는 멋진 왼발 터닝 슈팅으로 상대 수비진을 무력화했다. 이강인의 반 박자 빠른 슈팅에, 골키퍼는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강인은 이어 후반 22분에 김민재와의 약속된 코너킥 전략으로 상대의 자책골까지 끌어냈다. 후반 첫 22분간, 이강인의 2골 1도움 ‘원맨쇼’가 펼쳐진 셈이다. 이강인은 후반 45분 문선민과 교체돼 임무를 마쳤다. 클린스만호는 후반 추가시간 황의조의 추가 골까지 나오며 4점 차 무실점 승리를 거뒀다.
이날 이강인은 에이스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강인은 지난 3월 클린스만호 출범 후 꾸준히 나섰으나, 공격 포인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화려한 드리블과 키 패스(슈팅으로 이어진 패스)는 여전했지만, ‘실속이 없다’라는 일부 의견이 있었다. 클린스만호 역시 첫 5경기에서 3무 2패에 그치는 등 대표팀 역사상 최악의 출발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이날 이강인은 팀의 승리를 홀로 견인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특히 주장 손흥민이 결장하고, 황희찬이 상대의 거친 파울에 막힌 상황에서 나온 활약이어서 의미가 컸다.
잘렐 카드리 튀니지 대표팀 감독은 경기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18번 이강인이 인상적이었다. 개인기도 뛰어나고 스피드가 뛰어나서 차이를 만들 수 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루 뒤 프랑스 현지 매체 르 파리지엥, RMC 스포르트는 “한국은 이강인의 활약에 힘입어 튀니지를 완파했다”라며 칭찬 대열에 합류했다.
이강인은 지난 8월 열린 2023~24시즌 리그1 툴루즈와의 2라운드에서 활약한 뒤 허벅지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한 달의 공백기 후 그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서 10분이라는 짧은 복귀전을 치르고, 곧바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AG)에 참가 중인 황선홍호로 향했다. 이강인은 조별리그 3차전을 시작으로, 토너먼트 전 경기에 나서며 팀의 금메달 레이스를 함께했다. 이어 곧바로 클린스만 감독의 부름을 받아 A대표팀에 합류했다. 숨 바쁜 일정이었지만, 4년 만에 자신의 A매치 데뷔골을 신고하며 ‘에이스의 서사’를 시작했다.
한편 멀티 골을 터뜨린 이강인을 향해 클린스만 감독은 “축구선수가 아닌 연예인 대우를 받고 있다. 연예인은 골을 넣지 않는다. 이강인이 더 성장하려면 겸손하고 배고프게, 축구에 집중하는 환경이 필요하다”라며 걱정하기도 했다. 이강인은 “난 항상 팀에 도움이 되고 승리에 가까워질 수 있는 플레이를 하려고 할 뿐”이라며 자신의 역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