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관행은 국회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올해 국정감사도 체육단체는 '동네북 신세'였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열린 2023년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참석한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한순간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재차 이어진 유정주 의원의 자유계약선수(FA) 계약 관련 ‘전수조사 시행’ 강요 탓이었다.
허구연 총재를 증인으로 신청한 유정주 의원은 KBO에서 발행하는 연감에 기재된 FA 선수 계약 내용과 실제가 다른 점을 꼬집었다. 과거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구단과 계약한 선수 A(은퇴)가 자신도 모르는 계약 탓에 ‘뒷돈 거래’ 의혹을 받은 사례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총재 권한으로 FA 계약에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단이 갖고 있는 계약서도 모두 달라고 했다.
허구연 총재는 통일 계약서 작성이 도입되기 전인 2018년까지는 선수와 구단이 자율적으로 계약했고, 연감은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기입하기 때문에 상이할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A선수에 대해서는 “확인 결과 뒷돈 거래가 없었다. 유 의원이 관련 자료를 준다면 더 확인할 것”이라고 했다.
허구연 총재는 수사권이 없는 KBO가 구단을 상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제한적이라고도 전했다. 유정주 의원이 추가 질의를 통해 “전수조사 시행에 대해 확답을 하고 가시라”라고 재차 요구하자, 결국 황당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과 함께 웃어버린 것이다.
유정주 의원은 FA 계약 관련 규정이 달라진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연감과 계약서상 내용의 상이점을 문제 삼았다. A 선수에 계약에 구단이 뒷돈을 챙겼다는 의혹은 아직 밝혀진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전수조사가 이뤄지는 자체로도 스포츠팬에 부정적 인식을 줄 수밖에 없다. 비위가 만연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유정주 의원이 제시한 근거만으로는 리그를 흔들 순 없는 일이다.
유정주 의원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는 국회에 더 필요한 자세로 보인다. 국정감사만 하면 스포츠 단체장이나 유명 인사에 대한 ‘망신 주기’를 자행한다.
2017년 10월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는 구본능 전 KBO 총재가 출석했다. 질의에 나선 손혜원 전 의원은 고성으로 구 전 총재와 양해영 전 사무총장의 비리 연루 의혹을 캐물었다. 두 사람의 동반 퇴진을 주장하기도 했다. 손 전 의원은 이듬해 10월 열린 문체위 국정감사에서도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비상식적인 추측과 전문성이 결여된 질문으로 스포츠팬의 비난을 자초했다. 이날 선 감독은 대표팀 감독 판공비와 관련해 추궁하는 손 전 의원에 말에 허탈한 표정으로 실소했다.
올해 국감에서도 그랬다. 유정주 의원은 아직 비위 사실이 밝혀진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미 운영 기구의 관리가 부실하다고 단정, KBO리그 총재를 다그친 인상을 줬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도 임오경 의원으로부터 지방체육 지원과 우수선수 양성 예산이 삭감된 점에 대해 관련 질의를 받으며 시종일관 혼이 났다. 실태를 잘 아는 스포츠 선수 출신(핸드볼) 국회의원의 고언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이를 말하는 임 의원의 태도도 다소 고압적인 것도 사실이었다.
스포츠 기관에 문제가 있으면 엄중히 따져 물어야 한다. 하지만 빈약한 근거로 사안의 심각성을 부풀리는 건 다른 문제다. 추궁을 위한 추궁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스포츠팬를 무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총선(2024년 4월)이 다가온 상황. 정치인들이 시선을 끌기 위해 혈안이 된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