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올해 K팝 히트곡들은 대략 2분 내외다. 그룹 뉴진스의 ‘수퍼 샤이’는 2분 34초, ‘ETA’는 2분 21초, ‘쿨 위드 유’는 2분 27초다. (여자)아이들의 ‘퀸카’는 2분 41초, 르세라핌의 ‘주얼리’는 2분 43초다.
몇 년 사이 3~4분이었던 곡들이 더 짧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마케팅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성이 짧을수록 마케팅에 사용될 수 있는 도입부와 후렴구가 짧아지면서 마케팅에 활용되기 용이하다.
마케팅에 이용되는 SNS, 유튜브 쇼츠 등 최신 플랫폼에서 사용되는 곡의 길이는 대략 22초에서 38초 사이다. 이는 MZ세대의 빠른 소비 패턴을 공략한 데다가, 스트리밍 수를 올리는 효과로 이어진다. 마케팅에 공을 들이다 보니 곡보다는 콘셉트가 우선시되는 경향은 더 강해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K팝의 큰 특징은 ‘마케팅 맞춤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작곡가는 “MZ세대들이 도입부와 후렴구를 합쳐서 최대 38초 미만이어야 음악을 듣는다. 40초도 안 듣는다”며 “마케팅을 위해 도입부와 후렴구를 합쳐 38초 안에 맞춰달라고 주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 플랫폼 마케팅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선 이젠 무조건 짧아야 한다”며 “유튜브 쇼츠의 경우엔 10초 내외여도 상관없지만 틱톡, 인스타그램 등은 최대 38초에 맞춰 홍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자)아이들. 사진제공=큐브엔터테인먼트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으려는 ‘38초의 법칙’은 퍼포먼스가 강한 K팝의 특징이다. ‘듣는 맛보다 보는 맛’이 강하기 때문. 그렇다 보니 댄스 곡은 노래가 만들어진 후 콘셉트가 정해지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콘셉트가 먼저인 경우가 다수다.
과거 ANR(아티스트의 발굴, 레코드 기획·제작, 제작 관리, 곡목 관리 등을 하는 스태프)은 소속사 대표 등 매니저가 전담했다면 이젠 각 회사마다 세분화되어 있다. 우리나라 거대 기획사 중 한 곳은 이 담당만 8개의 팀으로 분류된다.
ANR팀에서 콘셉트를 결정하는 아트 디렉터 또는 콘텐츠 디렉터가 먼저 곡의 분위기를 결정해 작곡가 및 작사가에게 주문하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작곡가는 “아트 디렉터가 먼저 콘셉트를 잡고 의상, 헤어, 메이크업 등을 정한 후에 곡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와 비교해 역진행 방식”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를 두고 콘셉트가 중요할수록 음악성이 반비례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한 가요 관계자는 “콘셉트에 중점을 두면 결국 빨리 소비 가능한 음악을 만들기 쉽다. K팝 자체가 질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을 마케팅과 음악성을 이분법적으로 단정 지으며 판단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도헌 음악평론가는 “좋은 곡과 테마를 만드는 것이 K팝 발전에 필요한 부분”이라면서도 “콘셉트와 작가주의 음악성을 동시에 가져가는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뉴진스다. 이런 노력이 K팝 시장의 미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