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미국 메이저리그(MLB) 최종 승자는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1961년 창단한 텍사스는 월드시리즈(WS·7전 4승제) 우승 경험이 없는 6개 팀 중 하나였지만, 올해 역대 세 번째 WS 무대를 밟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4승 1패로 꺾었다. 수많은 기록과 스토리를 써 내려가면 '가을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근 MLB에선 팀 연봉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하다. 올해 MLB 구단의 평균 연봉은 1억6500만 달러(2179억원)를 살짝 넘는다. 각 구단의 균형을 맞추려는 사치세 기준은 2억3300만 달러(3077억원). 만약 사치세를 초과하면 첫해는 넘긴 금액의 20%, 2년째는 30%, 3년째는 무려 50%를 내야 하니 구단의 부담이 작지 않다.
올 시즌에는 이 기준에 저촉한 구단만 7개(총 30개)에 이른다. 3억4000만 달러(4490억원)가 넘는 뉴욕 메츠가 단연 1위다. 그 뒤를 뉴욕 양키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텍사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LA 다저스, 휴스턴 애스트로가 잇는다. WS에서 텍사스를 상대한 애리조나의 팀 연봉은 1억1900만 달러(1571억원)로 21위 수준이다.
사치세를 부담하는 팀 중 양키스와 메츠, 샌디에이고는 포스트시즌(PS)에 오르지 못했다. 가을 야구에 실패한 세 구단은 물론이고, 텍사스를 제외한 나머지 세 구단도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거다. 돈을 쓸 만큼 쓰고 스타 영향력도 충분히 갖춘 팀이라면 목표가 당연히 WS 우승일 텐데 결과가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다. 투자 대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텍사스는 지난 2년간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무려 8억 달러(1조564억원)를 쏟아부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보다 더한 돈을 퍼부은 구단이 있어 상대적으로 텍사스의 투자는 '현명해' 보인다.
이번 WS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코리 시거는 2020년 다저스 소속으로 이미 한 차례 우승 반지를 낀 경험이 있다. 그해 챔피언십시리즈에서 MVP에 선정되는 등 흔히 말해 '고기 맛을 아는 선수'였다. 텍사스는 그런 시거를 2021년 11월 10년, 총액 3억2500만 달러(4292억원) 대형 계약으로 영입했다. 동료들에게 귀감이 되는 '조용한 리더' 마커스 시미언은 시거의 텍사스 입단 동료로 7년, 총액 1억7500만 달러(2311억원)를 보장받았다. 이번 PS에서 무려 5승을 챙긴 네이선 이볼디는 2018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이미 우승을 경험한 선수다.
긴 시간 단장에 사장까지 역임한 존 대니얼스가 물러난 뒤 배턴을 이어받은 크리스 영 단장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제이콥 디그롬과 앤드류 히니, 이볼디 등을 영입해 마운드 높이를 올렸다. 디그롬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가 발생했지만, 이볼디와 조던 몽고메리가 쌍두마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여기에 베테랑 맥스 슈어저를 트레이드로 영입해 로테이션을 보강했다. 우승을 향한 마지막 퍼즐로 3년간 은퇴 생활을 하던 명장 브루스 보치 감독을 다시 그라운드로 끌어내며 합리적 투자의 화룡점정을 만들어 냈다.
물론 이들의 힘만으로 우승이 만들어진 건 아니다. 조시 영, 에반 카터와 같은 신인들의 특급 활약도 빼놓을 순 없다. 하지만 풍부한 PS 경험과 이를 통해 이미 검증된 베테랑 선수들의 영입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텍사스의 선택은 WS 우승이라는 결과를 통해 현명한 투자라는 걸 검증받은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