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눈을 반짝이면서 시청했던 ‘인생 만화’ 한 편쯤은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요?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세계관이지만, 만화 속 인물들과 스토리에 우리의 삶은 더 즐거워지거나 위로를 받기도 하죠. ‘더쿠미’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나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장르의 만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육식과 초식의 올바른 관계 같은 건 먹고 먹히는 관계, 그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사이좋게 지내는 의미가 있는 거예요.”
2017년 일본 주간 소년 챔피언에서 처음 연재된 ‘비스타즈’는 이듬해 일본만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올해 1월 총 22권을 끝으로 완결됐으며,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넷플릭스에 24화까지 공개됐다.
‘비스타즈’는 팬들 사이에서 ‘성인용 주토피아’라고 불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가 여러 동물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이상적인 낙원을 그려냈다면 ‘비스타즈’는 약육강식의 세계, 즉 육식계와 초식계가 공존하는 야생을 그대로 옮겨왔다. 그래서 ‘비스타즈’는 1화부터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고등학교인 체리톤 학교에서 알파카 학생 ‘테무’가 잔인하게 잡아먹히는 ‘식육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테무 사건 이후로 학생들은 서로를 극도로 경계한다. 초식계는 육식계를 두려워하고, 육식계는 자신들을 혐오하는 시선들에 분노한다. 이들 중에는 초식계를 잡아먹고 싶다는 욕망을 가까스로 억누르는 이들도 있다. ‘비스타즈’의 주인공인 늑대 ‘레고시’도 예외는 아니다.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레고시는 늦은 밤 우연히 마주친 토끼 ‘하루’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그를 덮친다. 하루에게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순간, 이성이 돌아온 레고시는 정신을 차리고 하루를 풀어준다. 이후 죄책감에 매일 하루의 뒤를 쫓던 레고시는 학생 회장인 사슴 루이와 하루와의 은밀한 관계를 목격하고 자신의 진짜 마음을 자각한다. 사실은 하루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다른 종족인 늑대와 토끼의 비현실적인 사랑. 동화같은 이야기지만 ‘비스타즈’는 레고시와 하루의 관계를 결코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하루는 먹이사슬의 하위 층에서 절대 탈출할 수 없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강한 육식계에 빌붙으며 목숨을 연명한다. 레고시는 하루를 위해 자신의 야생성을 억누르려 하지만, 육식계에 대한 초식계의 편견을 차마 깨부수지 못한다. 심지어 친한 친구인 호랑이 쥬노조차 초식계의 고기를 거래하는 밀거래 시장에 드나드는 것을 보면서 좌절을 느낄 뿐이다.
여기에 초식계를 납치해 식육을 행하는 사자회, 사자회의 악행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사슴 오그마, 희귀종이란 이유로 같은 초식계를 무시하고 따돌리는 미그치 등 악하면서도 입체적인 인물과 스토리가 ‘비스타즈’ 곳곳에 배치됐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독자들은 ‘비스타즈’의 세계관이 곧 잔혹한 인간 사회를 본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물로 묘사된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은 씁쓸함을 안길 뿐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이 끔찍한 세계에, 레고시는 작고 약한 존재 하루에게 눈을 돌린다. 무수한 외압과 자기혐오의 감정을 이겨낸 레고시는 하루를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세계를 돌파할 단 한 가지 방법을 깨닫는다. 자신의 손톱과 이빨은, 약한 자를 위해 쓸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