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엄마’라는 수식어를 아무에게나 붙여 주시는 건 아니잖아요. 제게 그 정도의 믿음과 기대가 있다는 게 굉장히 부담스러우면서도 영광이죠.”
배우 김해숙이 또 다시 엄마를 연기한다. 이번에도 보통 엄마는 아니다. 하늘에서 딸을 보기 위해 3일간 휴가를 나온 새로운 엄마를 보여준다. ‘영혼 엄마’라고 하면 될 듯하다.
김해숙은 최근 영화 ‘3일의 휴가’ 개봉에 맞춰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국민 엄마’의 귀환이라는 평에 대해 “사실 내가 100점짜리 엄마도 아니고 그런 수식어가 처음엔 부담스럽고 죄송스럽기까지 했다”면서도 “그래도 영화를 하면서 정말 다양한 엄마를 연기할 수 있어서 굉장히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3일의 휴가’는 하늘에서 휴가 온 엄마 복자(김해숙)와 엄마의 레시피로 백반집을 운영하는 딸 진주(신민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줄만 알았던 딸이 자신이 운영하던 백반집을 이어받아 살고 있는 것에 열받아 하는 부분에선 김해숙의 코믹한 매력이, 딸이 마음의 응어리와 짐을 덜어내길 바라는 부분에선 절절한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수많은 엄마를 연기하면서도 틀에 박히지 않은 김해숙의 연기. ‘3일의 휴가’ 육상효 감독이 김해숙을 복자 역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2시간여의 러닝타임 내에 관객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해야 하는 중차대한 역할인 만큼 김해숙 외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김해숙 역시 복자에게서 다른 매력을 봤다. 수많은 엄마를 연기했지만 복자는 지금까지와 다른 엄마라 느껴졌다. 영혼으로 딸의 곁에 휴가를 온다는 발상 역시 신선하다고 판단했다.
“저 역시 엄마다보니 엄마를 연기할 때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3일의 휴가’ 복자는 이때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엄마라 여겨졌고, 잘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어요.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이 영혼으로라도 내 곁에 와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하지 않나요. 그런 보편성도 좋았죠.”
영화는 관객들을 억지로 울리지는 않는다. 당초 시나리오엔 슬픈 장면이 더 많았는데 촬영, 편집 과정에서 많이 덜어졌다. 복자와 진주 사이의 드라마가 엄청나게 특별하지도 않다. 누구나 한 번쯤은 엄마에게 외면받았다고 느낀 순간이, 엄마가 걸어온 전화를 받지 않은 순간이 있지 않나. 그런 소소함과 평범함이 쌓여 러닝타임 후반부에 차오르는 감정이 묵직하다.
김해숙은 “우리 영화를 통해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소중한 사람에게 전화를 한 번 걸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면 금상첨화. 누구나 바쁜 일상 속에서 사실 이런 계기가 아니면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렵다는 걸 김해숙도 알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저도 복자와 진주의 감정에 동화되는 걸 느꼈거든요. 영화를 보시는 관객들도 그런 경험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는 게 힘들고 복잡해지면서 어쩐지 인간미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은데요. 그러다 보니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나중으로 미루게 되죠. ‘3일의 휴가’를 보시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도화지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던 김해숙. 그는 “그 소망을 지금은 이룬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면서 “앞으로도 좋은 작품에서 연기로 보답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싶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몇 년 전부터인가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거든요. 그 마음에 감사하고 보답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아직 제 안에는 꺼내고 싶은 제가 많아요. 앞으로도 같은 캐릭터를 반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도전해나가는 배우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