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讀說). 읽고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정진영의 독설’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안을 한 번 더 깊게 들여다보고 기사로 푸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키즈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겐 불문율이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말고 구독자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계속 찍어 올리라는 것. 키즈 콘텐츠의 주된 소비층은 당연하게도 어린이들.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계속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키즈 콘텐츠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재화가 됐든 콘텐츠가 됐든 무언가를 소비한다는 건 시간, 노력, 돈 등 품이 드는 행위다. 이전에 맛있게 먹었던, 재미있게 봤던 것과 유사한 걸 선택하는 게 안전하다.
그런데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선 그게 아닌가 보다. 자꾸 새로운 걸 만들고 싶어 하고, 기존의 것을 답습하는 것을 안주라고 생각한다. 창작자로서 당연한 욕구일 수 있지만, 최소한 크게 흥행한 작품의 후속을 작업하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백반 맛집으로 소문나서 찾아갔는데 피자가 나오면 당황하지 않을 소비자는 없을 테니까.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독전2’와 시리즈 ‘스위트홈2’가 딱 그런 경우다. 전편이 독창적인 세계관과 분위기로 큰 성공을 거뒀는데, 2편에서 새로운 걸 보여주겠다며 전편의 미덕을 버렸다. 1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2편을 보기로 결정한 시청자들에게서 또렷한 ‘불호’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독전2’는 2018년 개봉해 누적 관객 수 520만을 동원한 ‘독전’의 미드퀄을 표방한다. ‘독전’은 이선생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마약범을 잡기 위한 형사 조원호(조진웅)의 수사를 그린 작품. 이선생의 정체를 끝까지 추론하게 하는 재미와 인물이 가진 상징성, 열린 결말 등으로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관객들이 관련한 이야기를 지속할 수 있게 했다.
‘독전2’는 전작에서 열어놓은 결말을 닫고, 이선생의 정체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서 기존 캐릭터들이 갖고 있던 고유의 특성을 잃게 했다. 여기에 새로운 인물들에게 큰 비중을 부여하면서 주인공이 교체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스위트홈2’ 역시 ‘독전2’와 비슷한 실수를 했다. 폭탄이 떨어지고 군인들이 괴물과 총격전을 벌이는 등 스케일은 확실히 커졌으나, 폐쇄된 공간 안에 갇힌 사람들이 각각의 욕망과 마주하며 공포를 느끼는 밀도 있는 긴장감은 사라졌다. 크리처가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연근이’나 ‘프로틴’처럼 강한 인상을 남긴 존재는 없었다는 평가다.
무장한 군인들이 괴물이 나오면 척척 다 때려잡기 때문에 누가 죽겠다는 걱정이 없어졌다. 작품을 연출한 이응복 감독은 “시즌1은 폐쇄된 공간에서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내용인데, 그걸 똑같이 반복하면 새로움과 캐릭터의 변주를 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배경 이동과 새로운 캐릭터 대거 투입의 이유를 설명했다.
‘스위트홈1’은 그린홈이라는 한국에서 익숙한 복도식 아파트를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다양한 크리처를 만들어냈다. 전 세계 넷플릭스 구독자들은 크게 호응했다. 새로운 도전이 먹혀든 것이다. 그렇기에 시즌2에서까지 굳이 새로움을 찾아 나서 판을 이런 방식으로 키울 이유가 있었을지 의문이다. 무려 3년이나 시즌2를 기다렸던 시청자들은 스케일을 키운다며 모든 것을 뜯어 바꾼 ‘스위트홈2’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시즌2는 새롭게 등장하는 설정과 인물이 너무 많아 여러 번 봐도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크게 흥한 작품의 후속을 만들면서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걸 보여주겠다는 건 무모한 도전일 수 있다. 과거 MBC 예능의 전성기를 이끈 송창의 PD가 인터뷰에서 “시청자의 생각보다 딱 반발짝만 앞서가야 한다”고 했던 말의 의미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통렬하게 말하자면 1편에 대한 애정이 있는 이들에 대한 기만이다.